1.
요즘 '강한 중단'과 그를 기반으로 공세를 연습해 보려 하고 있다. 예전에는 순발력과 죽도 스피드, 죽도의 현란한 움직임에 기대어 대련을 했다면 이제는 죽도로 상대를 가만히 겨눈 상태(중단세)에서 상대를 완전히 이기고 난 뒤 타격을 하는 연습을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연습을 하려고 하는 건 죽도를 단순한 '막대기'가 아니라 '칼'로 인식하고 수련을 하기 위해서이다. 4단이 되고 나니 이제 그런 길로 들어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수련 방향처럼 느껴졌다. 보호구를 찬 상태에서, 맞아도 큰 상처가 나지 않는 죽도를 쓰다보니 요행을 바라는 타격이 많아지고, 설령 타격이 제대로 되지 않아도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생각(다시 한 번 더 치면 되니까)으로 수련에 임했었는데, 그런 행동은 죽도를 칼이라고 여긴다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대로 죽도 스포츠를 즐길 것인가, 아니면 죽도 검도를 넘어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 볼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나는 후자를 택해보기로 했다.
문제는 '강한 중단'이라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었다. 기본적으로 중단을 유지하고 또 지키고자 노력하다 보니 상대방이 내게 들어오다가 내 죽도에 그의 목이나 어깨가 걸리는 일이 늘기 시작했다. 이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상대방의 죽도에 자신의 목이 걸리면 언짢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자꾸 죽도를 내 목에 거는 상대 때문에 불쾌했던 기억이 있었다. 나도 지금 상대방에게 그런 좋지 않은 느낌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2.
강한 중단을 유지하는 행위와 죽도를 상대 목에 거는 행위는 결과적인 모습은 비슷할지 몰라도 의도는 매우 다르다. 강한 중단은 공세를 위한 것이지만 목에 거는 행위는 방어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공격할 의지 없이 자꾸 뒤로 물러서며 죽도를 목에 걸기만 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되도록 공세를 유지하려 했지만 잘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공세의 성격을 유지하며 되도록 물러서지 않으려 했지만 상대방이 느끼는 건 다를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제대로 된 중단을 유지하고 있는가? 강한 공세를 하고 있는가? 의심이 들었다. 상대방의 몸이 내 죽도에 걸리는 일이 늘어날수록 그 의심에 힘이 실렸다.
강한 중단이라는 것은 결국 공세를 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중단을 유지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그걸 무너뜨리지 않고 그냥 들어오다가 걸린다면 그건 상대방의 잘못이다. 상대의 칼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 없이 그냥 들어가는 건 무모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내 칼을 죽이고 나서, 다시 말해 내 죽도를 스치거나 젖히거나 누른 뒤 들어왔다면, 중심에서 빗나간 내 죽도를 다시 들어올려 상대방 목을 향하게 하기보다는 같이 치거나 받아치거나 흘려치거나 하는 대응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이 내 죽도를 죽이고 들어오는 데도 마냥 중단을 유지하려고 하는 건 공세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내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는 듯했다. 나는 상대방이 내 죽도를 죽이고 들어오는 데도 그저 제자리에 선 채 중단만을 유지하려 했다. 특히 초심자는 상대방의 죽도를 죽이고 들어가려고 해도ㅡ몸이나 발이 느리기 때문에ㅡ상대방이 죽도를 다시 세워 중단을 유지하면 몸이 죽도에 걸려버리고 만다. 그런 행동을 반복하면 둘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강한 중단을 이유로 죽도에만 관심을 쏟다 보니 발이 멈춰버리고 말았다. 발이 멈춰버리니 상대방의 죽도 죽이기 기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서며 다시 중단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중단을 유지하고 있다고, 혹은 강한 중단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선 목에 거는 행위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내가 그저 땀을 흘리는 스포츠 검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것이다.
강한 중단에 의미를 두지 않았을 때의 대련 모습. 서울 경도관,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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