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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발선인장과의 인연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12. 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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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만개한 게발선인장. 서울, 2018.12. 5.


1.

7년 전, 서울에 위치한 한 가구점 사장과 약간의 언쟁을 벌인 후 게발선인장을 집에 들여왔다. 


당시 호주에서 갓 돌아온 나는 서울의 한 가구 매장에 들러 집에서 사용할 책상과 책장 그리고 의자를 구매했다. 그런데 매장에 전시되어 있던 제품과는 다르게 집에 들어온 책상과 책장에선 접착제 냄새, 흔히 말하는 '새집 냄새'가 심하게 났다. 가구점 사장은 한사코 환불을 거부했다. 교환해줄 수는 있으나 가구 이동비와 설치비를 모두 내가 지불해야 하며, 교환한 가구에서 냄새가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난 사전에 가구에서 이렇게 심한 냄새가 날 수도 있음을 고지해주지 않았으므로 판매자의 잘못이라고 주장했으나 사장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난 MDF나 PB로 만든 제품은 심한 접착제 냄새가 날 수도 있음을 판매자에게 알려 구매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야 올바른 것 아닌가 하고 따졌으나, 시장 자유주의자이자 자기연민가였던 가구점 사장은 그런 식으로 안내를 하면 자기 같은 소규모 가구점은 다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되려 하소연을 했다. 


"그럼 사장님이 제 상황이시라면 사장님은 군말 않고 그냥 이 책상 쓰시겠어요? 책상에서 지금 독한 냄새가 나고 있는데?"라는 나의 '역지사지' 펀치에 사장은 "다음부턴 비싼 돈 주고 원목 가구 사서 쓰세요!"라고 답했다.


어찌해야 할까? 더 투쟁해야 할까?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고 법적 싸움을 벌일 시간도 없었으므로 그 상황을 수용하기로 했다. 난 사들인 책상과 책장을 작은방에 넣은 뒤 되도록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이른 아침 근처에 있는 구립 도서관에 갔다가 밤이 되어야 집에 들어왔다. 다시는 MDF나 PB로 만든 가구는 사용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그리고 그날로 포름알데히드(폼알데하이드) 제거에 좋다는 게발선인장을 집에 들여왔다.



2.

근처 이마트에서 구입했을 당시의 게발선인장. 서울, 2011. 2. 6.



게발선인장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몇몇 식물들을 같이 구매했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게발선인장뿐이다. 동식물을 통틀어 우리 집에서 나와 가장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게 바로 이 게발선인장이다.


게발선인장을 집에 들여온 지 한 달여 만에 난 서울을 떠나 속초로 가게 되었다. 새로 입사한 회사는 날 설악산국립공원으로 발령냈는데, 속초에서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었기에 식물들을 데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 결국 동생이 내가 사들인 식물들을 도맡아 키우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게발선인장과 마주했을 때 게발선인장은 처음과 달리 훌쩍 자라 있었다. 잘 키워준 동생에게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게발선인장과 다시 만났지만 난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선인장이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물은 줬는지 안 줬는지 기억이 안 날 때쯤 한 번씩 물을 주는 게 전부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용케 게발선인장을 꽃을 피우곤 했다. 


그러던 중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작년에도 꽃봉오리를 만들어 낸 게발선인장이 마지막에 꽃을 피워내지 못한 것이다. 꽃봉오리까지 나왔는데 꽃을 피우지 못하다니. 게발선인장을 사람으로 의인하여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렸다. 난 내 무관심을 탓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신경을 더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일까. 올해엔 게발선인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꽃을 피워냈다. 작은 관심만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걸 그간 왜 그리 무신경했던 것일까. 하기야 식물에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많은 일들이 여전히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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