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집 아파트 발코니에는 올 여름에 들여온 금목서 한 그루가 있다. 만리향으로 알려져 있는 금목서의 향기를 맡고 싶어서 들여온 식물이었다.
집에 도착한 금목서는 이미 꽃눈을 살짝 내밀고 있었다. 잘하면 올 가을에 꽃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잎의 상태가 좋지 않아 염려스럽기도 했다. 잎의 상당수가 끝이 갈색으로 변하여 말라 있었고, 잎 일부는 구겨진 옷감처럼 말려 있어 세균 감염까지 의심스러운 상태였다. 아무리 인터넷 주문이라지만 이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 식물을 보내다니. 언짢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래도 이것도 인연이라는 마음에 환불이나 교환을 신청하지 않고 곧바로 분갈이를 했다. 분갈이에 적합하지 않은 시기였지만 질 낮은 포트의 밑바닥으로 금목서의 뿌리가 길게 뻗어 나와 있어 그대로 두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금목서의 잎 표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가루마저 가득하여 일일이 닦아내야 했으니, 금목서를 판매한 농원에서 식물 관리를 거의 하지 않은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잎들은 갈변에도 불구하고 생기가 있었다. 축 처지지 않은 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기에 잎끝의 갈변은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기대도 있었다.
사실 잎의 갈변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채광과 환기였다. 태양빛이 곧장 쏟아지는 따뜻한 남쪽 지방의 환경에 익숙한 금목서가 아파트 발코니의 부족한 직사광선과 반사광에 잘 적응할지 우려스러웠다. 마냥 발코니에 두는 건 성에 차지 않아 때때로 금목서를 집밖으로 옮겨 주어 광합성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덤으로 발코니에 식물 전용 서큘레이터를 설치하여 공기 순환과 교환이 잘 이루어지게 했다. 야외에 있는 것보다야 덜할 테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이런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9월말이 다 되도록 꽃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금목서는 10월 초면 꽃을 피우는데 우리집 발코니의 금목서는 여전히 그대로였으니 역시 광합성 부족으로 꽃을 피우지 못하는 듯 보였다. 게다가 9월 말에 찾아갔던 충북 음성군에는 이미 만개한 금목서가 있었다. 그를 보고 나니 꽃순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우리집 금목서에 대한 기대감은 더 떨어지고 말았다.
2.
그 와중에 잎의 갈변은 점점 더 심해졌다. 갈색으로 말라가는 부위가 점점 더 넓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현상이 우리 집 금목서에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전국에서 찾아본 금목서들 역시 적지 않은 수가 잎끝이 갈색으로 변한 채 말라가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은목서나 다른 식물들은 온전한데 금목서만 잎끝이 말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저런 근거로 판단해 보건대 금목서는 공해에 취약하거나 폭염 같은 환경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전국의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금목서의 잎끝 마름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금목서도 여럿 되었으니 연구자가 아닌 입장에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3.
기대를 반쯤 접었던 10월 중순 무렵, 꽃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2018년 10월 10일, 금목서의 꽃순이 전에 비해 확연히 커진 것을 발견했다. 이틀 뒤엔 꽃순에서 여러 개의 멍울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다음날엔 멍울들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틀쯤 뒤엔 꽃봉오리가 생겨났다. 이처럼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꽃순들이 단 며칠 사이에 급속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바로 어제, 마침내 아파트 발코니의 금목서가 꽃을 피워냈다.
금목서는 꽃망울 상태에서도 향기를 내뿜었다. 꽃이 핀 지금은 더욱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맡아 본 향기 중 가장 달콤했다. 이 향기는, 굳이 비유를 하자면, 특정 섬유유연제와 방향제에서 나는 향과 비슷했다. 아마도 금목서의 이 향을 흉내낸 것이리라. 하지만 인공의 향과 자연의 향을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 꽃은 노란색이고 꽃잎은 살짝 닫혀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금목서는 자신의 꽃잎을 주황색으로 바꾼 뒤 그 잎을 활짝 펼칠 것이다. 이 꽃을 피우기 위해, 이 달콤한 향을 흘리기 위해 금목서는 올해 내내 잎과 뿌리에 저장해 두었던 양분을 한껏 쏟아내고 있다.
부족한 빛에 굴하지 않은 금목서에게, 광합성을 하기엔 부족한 잎의 상태에도 포기하지 않은 금목서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집에 금목서가 도착한 첫날에 촬영한 우리집 금목서의 꽃눈. 서울, 2018. 8.22.
커지기 시작한 금목서의 꽃눈. 서울, 2018.10.10.
여러 개의 멍울이 생겨난 금목서의 꽃눈. 서울, 2018.10.13.
꽃망울이 나타난 금목서. 서울, 2018.10.15.
꽃망울이 커진 금목서. 잠시 거실에 들여왔다. 서울, 2018.10.16.
노란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한 금목서. 달콤한 향이 집안을 채우고 있다. 서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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