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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사범자격 강습회 수료 및 사범자격 시험 응시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10. 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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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도 사범자격 강습회 수료 및 사범자격 시험을 치르기 위해 1박 2일 일정으로 충북 음성시에 있는 대한검도회 중앙연수원에 다녀왔다. 사범 자격이라는 것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있을 때 받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앞날을 미리 알 순 없지만 5단 심사를 위해선 사범자격 강습회를 수료해 두어야 하니 이래저래 이 시기에 강습회를 다녀오는 것이 좋을 거란 생각을 했다. 


금요일이 포함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60명 제한의 강습회는 인원이 모두 차 신청이 일찍 마감되었다. 강습회는 금요일 아침 10시 시작이었기에 차를 타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다. 강습회를 수료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온 분도 계셨으니 내가 길에서 소모한 2시간은 그에 비하면 약과라고 해야겠다.


이번 사범자격 강습회에는 실업팀 선수들도 적잖이 참가하였다. 전체 60명 중 8명이 실업 선수였으니 적다고는 할 수 없는 비율이었다. 이 선수들 중엔 이번에 국가대표에 뽑혔던 이진영 선수도 있었다. 이진영 선수는 며칠 전에 인천에서 개최되었던 제17회 세계검도선수권 대회 개인전에 참가하였는데 아쉽게도 3회전에서 일본의 다케노우치 선수에게 패한 바 있다. 대회 당시에 이진영 선수는 얼굴에 마스크를 한 채 돌아다녀 내 눈에 띄었다.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 감기는 다 나았느냐고 물으니 쑥스럽게 웃으며 아직이라 답했다.



2.

실기 시간은 이 실업 선수들 덕분에 흥미진진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8단 선생님 세 분이 이끄신 합동 연무 시간에 8단 선생님께 들어가기 위해 서둘러 호면을 썼는데, 두 번째로 줄을 섰음에도 호면끈이 제대로 묶이지 않은 것 같아 제풀에 다시 정리하고 나가는 바람에 순서가 뒤로 밀리고 말았다. 8단 선생님들에게로 가는 대기 줄이 너무 길어 다른 곳을 보니 실업 선수들이 서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업 선수들 뒤로는 대기자가 거의 없었다. 실업 선수와 언제 또 이렇게 연습을 해보겠는가. 난 얼른 대기자로 들어갔다. 


이날 여러 실업팀 선수들과 연습을 했는데 선수들은 시합하는 느낌 없이 심사하는 듯한 태도로 날 상대해 주었다. 인천 시청의 박홍준 선수도 훌륭했지만 특히 수원 시청의 최원석 선수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았다. 매일 검도를 하는 사람들이라 이런 자리가 귀찮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었을 텐데 최원석 선수에게선 그런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시합이 아니라 심사 시의 바른 자세를 보여 주니 내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연습을 하는 그의 태도는 시종일관 진지하여, 자신보다 하수가 아니라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대와 연습하는 자세로 합동 연무에 임하고 있음이 전해져 왔다. 


용산의 한영숙 관장님은 연습에 임할 땐 누구를 상대하든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하고, 힘이 들거나 체력이 다해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그를 핑계로 대충 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양해를 구한 뒤 자리에서 빠져 쉬는 게 낫다고 내게 말씀하신 바 있다. 그와 대련을 하고 나오는데 문득 그때의 말씀이 떠올랐다.


난 합동 연무가 아닌 기본 연습 시간에도 실업 선수들과 칼을 맞댈 수 있었다. 내가 아직 젊은 편에 속하는지 실업선수들과 한 조가 된 것이다. 


이때 국가대표 이진영 선수와도 대련했다. 그가 편하게, 가볍게 움직이는 듯했는데도 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머리치기가 멀리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치는 족족 내 머리에 들어왔다. 이렇듯 실력 차이는 확실했지만 주눅 들지 않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내 칼과 기술을 죽일 수는 있어도 기세만큼은 어쩌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런 생각이 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3.

난 이론 강의에도 꽤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검도의 역사' 수업 시간에 직접 강사로 나섰던 대한검도회 회장 이종림 선생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리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띠돈에 관한 것이었다. "남아 있는 사료를 보면 조선시대에는 환도를 패용할 때 대개 띠돈을 사용하여 칼자루가 등 뒤로 가도록 하였는데, 선생님께서는 조선세법을 복원하실 때 띠돈 대신 고리매기 방식을 선택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게 질문의 요지였다. 개인적으로 예상하던 답은 '띠돈 사용을 기본으로 지정하면 개개인이 환도 마련 시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답은 달랐으니, 띠돈매기는 조선시대의 것이지만 고리매기 방식은 삼국시대에도 존재하였으니 더 역사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에 더해 띠돈은 파손되기 쉬워 실제 전투에는 적합지 않다는 말씀도 하셨다. 실제 병사들이 사용하기엔 띠돈보다는 끈을 이용한 고리매기가 더 적합했을 거라는 말씀이셨다. 


이 말씀은 내 생각과도 일치하는 바가 있었다. 흔히 환도에 띠돈이 없으면 잘못된 고증이라며 비난을 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의례용 제식을 따르지 않았다고 하여 모두 잘못된 고증이라 말하는 것엔 어폐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이후 선생님은 향후 조선세법 시연 같은 행사 시에 띠돈매기를 적용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이종림 선생님은 대화 중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 이것은 일종의 겸양 표현이라, 선생님에 대한 하나의 특징으로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4. 

그다음 날 오전, 나를 포함한 수강생들은 강습회 수료증을 받았고, 그날 오후에는 사범 자격 심사에 임했다. 난 크게 긴장하지 않았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 합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심사에 들어가니 내 기대와는 다른 칼이 나왔다. 연격은 초반이 잘되지 않았고 대련에서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것만으로는 합격하기에 부족할 것 같다. 평소 연습을 진지하게 하지 않은 탓이다. 사범 심사 합격률은 높아야 30%에 불과하니 만일 이번에 내가 붙는다면 그건 순전히 운이라고 해야겠다.


이번에 내 심사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가져갔으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카메라를 설치하는 중 제지를 받아 촬영하지 못했다. 이번에 강습회를 진행하셨던 선생님 한 분께 미리 여쭌 뒤 허락을 받고 카메라를 설치하던 중이었는데, 심사장을 계시던 선생님은 그와 반대로 시험 장면을 촬영해선 안 된다고 하셨다. 어쩌면 심사 전 장면을 촬영하려는 것으로 오해받은 건 아닐까? 어쨌거나 난 마음을 접고 카메라를 껐는데, 심사자와 관람객 중 휴대전화로 심사 장면을 촬영하는 분들이 몇몇 있어 고개가 갸우뚱했다. 나도 주변 사람에게 부탁해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이미 한 번 제지를 받은 입장에서 다시 시도하기가 그랬으니, 심사 장면을 동영상으로 꼭 남겨야 하는 건 아니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다만 내가 이번 심사에서 어떤 실수를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한검도회 중앙연수원 무학재 건물의 전경. 음성군 보룡리, 2018. 9.28.


현무암으로 만든 돌하르방 한 쌍이 계단 앞에 선 채 무학재를 지키고 있었다. 음성군 보룡리, 2018. 9.28.


처마 끝에 풍경이 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들의 종소리가 울렸다. 음성군 보룡리, 2018. 9.28.


무학재 내부. 연수원의 나무 바닥은 딱딱하지 않아 발을 구를 때마다 적절하게 휘었으며, 그때마다 반동과 울림이 옆으로 퍼져나가 웅장한 데가 있었다. 음성군 보룡리, 2018. 9.28.


사범자격 강습회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국내 검도 4, 5단들의 연습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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