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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갈비찜,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요리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9. 2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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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석이 다가오니 또 갈비찜이 생각났다. 이런 명절이 아니면 또 언제 갈비찜을 집에서 해먹을까? 집에서 갈비찜을 만든 뒤 고향에 가지고 내려가면 어떨까, 하고 물어보니 아내도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코스트코에서 소갈비를 사왔다. 지난 추석엔 2.5kg의 소갈비로 갈비찜을 만들었었는데 양이 적다는 느낌이 들어 이번엔 약간의 고민 끝에 5kg의 소갈비를 구매했다. 


그날 코스트코에서 구매한 '여타' 재료에는 밤도 있었는데 그다음날 바로 갈비찜을 조리해야 했기에 그날 아내와 나는 거실에 함께 앉아 밤을 깎아야 했다. 아내는 늦은 밤에 밤을 깎는 일이 고됐는지 밤을 얼마나 더 깎아야 하는지, 이만하면 되었는지를 연신 묻곤 했다. 


"내가 오늘 이렇게 밤을 깎고 있을 줄은 몰랐어."


아내는 한참 밤을 깎다가 말했다. 하기사 나도 그날 밤을 깎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코스트코에서 밤을 판매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날 늦게까지 밤을 깎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깐 마늘'이나 '깐 파'처럼 코스트코에 '깐 밤'이 있었다면, 또는 내가 갈비찜에 밤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처럼 어렵사리 밤을 깎는 일은 없었을 테다. 그런데 코스트코에 깐 밤이 있었더라도 밤을 까고 있었을 것 같다. 깐 밤은 일반 밤보다 가격이 약 5배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아마 깐 밤의 가격표를 보며 머뭇거리다가 "그냥 내가 직접 밤을 까는 게 낫겠어" 하고 아내에게 말했을 테지. 하지만 착실한 아내는 또 이렇게 날 돕겠다며 칼과 밤을 들고 나섰다.


사실 갈비찜에 꼭 밤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조선 후기의 요리책이자 경상도 지방의 요리법을 담고 있는 <시의전서>에는 '가리찜', 즉 갈비찜에 밤을 넣으라는 설명이 없다. 현대의 갈비찜 조리법에도 밤을 넣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난 왜 지난번에도, 그리고 이번에도 밤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만 것일까? 밤은 익은 갈비와 색이 비슷하여 고명으로 눈에 띄지 않을 뿐더러 갈비찜을 먹는 입장에서도 "와, 밤이네!" 하며 알아줄 만한 재료가 아니었다. 실제로 갈비찜을 입에 댄 많은 식구들 중 밤을 언급한 사람은 아내뿐이었다. 다음번 갈비찜엔 밤을 넣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2.

어머니는 내가 갈비찜을 해갈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라셨다. 갈비찜은 하기 '어려운' 요리이니 고생하겠다고 염려를 하신 것이다. 


갈비찜이 어려운 요리인가? 난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난 밤을 깎았던 것 말고는 크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힘이 들었던 건 내가 주방에서 요리하느라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이였다. 아이는 요리는 그만하고 자기랑 놀아달라며 한참 떼를 썼고, 그러다 지친 나머지 내 발밑에서 잠이 들었다.


나에게 갈비찜은 만들기 힘든 요리라기보다는 비싼 요리였다. 맛을 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소고기가 기본인 요리는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보통 이상의 맛이 나온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상대가 고기에 유난한 미식기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내겐 동치미처럼 여러 야채로 맛을 내야하는 음식이나 기본 나물로만 무쳐야 하는 반찬이 '어렵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요리였다.


그런데 여자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비찜은 기본적으로 양이 많고 무겁기 때문이다. 갈비만 5kg인데 거기에 물과 무, 양파, 당근 같은 여러 재료들을 추가하면 무게는 가뿐히 6kg을 넘어간다. 그걸 전기레인지에 올리고 데쳤다가 물만 버리고 다시 물을 받은 뒤 전기레인지에 다시 올리고, 그 물을 다시 버리고... 나중엔 엄청난 양의 소스를 들어서 붓고 또 끓이고... 맛을 내는 건 둘째치고 무거운 재료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것 자체가 고역일 수밖에 없다. 남자인 나도 이것들을 옮기는 데 적지 않은 힘을 쏟아야 했으니 여자, 게다가 나이까지 드신 분들에게 이런 요리는 정말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의 주방일을 가볍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주방일에도 체력과 근력을 요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3.

조리법은 지난번과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진 것은 전체적인 양, 그리고 다 소진되어 더 넣을 수 없었던 간장뿐이다. 원래 간장 두 컵 넣을 생각이었는데 때마침 다 떨어져 한 컵밖에 넣지 못했다. 짜지 않아 오히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쩌다 보니 건강식이 된 느낌이었다. 정말 맛이 있었다면 그건 내 솜씨 덕분이 아니라 '소고기는 항상 옳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살짝 매콤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평을 남겼다. 다음번엔 고추, 특히 꽈리고추를 잊지 않고 챙겨야겠다. 꽈리고추를 어느 정도 넣으면 매콤한 맛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간의 평을 들어보면 아내는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듯하다. 간장 대신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어 매콤한 맛이 나는 갈비찜, 정확히 표현하자면 매운 찜갈비는 1960년대에 대구시 동인동에서 시작되었다. 대구 사람인 아내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내의 고향에 내려가게 되면 대구 동인동 찜갈비 골목도 한번 들러야겠다.


집에 큰 솥이 없어서 갈비를 냄비 세 군데에 나누어 담았다. 이렇게 담은 소갈비는 살짝 데쳐 기름기를 뺐다. 기름덩어리는 잘라내는 게 좋은데 시간이 부족하여 그냥 삶았다. 2018. 9.23.


양념, 고명 재료는 잘 씻은 뒤 물에 담가 놓았다. 2018. 9.23.


고명으로 넣을 당근과 무는 테두리를 깎아 둥글게 모양을 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문제. 2018. 9.23.


간장, 물엿, 설탕, 후추에 배, 사과를 갈아 넣어 만든 양념장. 갈비의 양이 많다보니 양념장의 양도 엄청났다. 2018. 9.23.


모든 재료와 양념장을 넣어 끓이고 있는 갈비찜. 하얀 무를 보고 있자니 가래떡이 생각났다. 다음번엔 가래떡도 넣어 봐야겠다. 2018.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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