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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9. 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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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천에서 세계검도선수권 대회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인천의 한 시장 도로변에서 무 하나를 샀다. 아내가 만들고 싶어 하는 음식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무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만 무가 그리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도로변에서 무를 팔고 있던 아주머니는 밭에서 갓 뽑아온 것 같은 커다란 무만 가지고 있었다. 2,000원이라는 가격에 하나 집어 들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와 난 남은 무를 어떻게 쓰면 좋을지 마땅한 생각이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난 아내에게 무조림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나흘 전, 마트에서 장 볼건데 필요한 재료 없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내 입은 배, 쪽파, 엿기름, 찹쌀 같은 단어를 늘어놓았다. 뭐할 때 쓰려는 재료냐는 물음에 내 입은 동치미와 식혜라는 대답을 꺼내놓았다. 식혜는 그렇다 치고 동치미는 왜 갑자기 떠오른 걸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편하게 꺼내 먹을 수 있는 국물 음식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추석 명절이 다가오자 전통 음식이 생각난 것일까? 


나는 일종의 즉석 동치미를 만들 생각이었기에 무와 배 등을 갈아내야 했다. 오늘 오전까지 무와 배, 양파를 열심히 갈았던 믹서기는 자신의 임무에 너무 열중하고 말았는지 임무 모두 마친 뒤 과열로 운명할 뻔했다. 



2.

난 면포에 갈아낸 재료를 넣은 뒤 즙을 짜냈다. 그리고 그때 문득, 어릴 적에 어머니가 약틀로 탕약을 짜내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은 참 신비로운 면이 있다.



3.

팔뚝만한 무와 아이 얼굴보다 큰 배로 동치미를 만들었지만 이것도 열심히 먹다보면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사흘 전에 만들었던 식혜는 밥솥으로 두 번이나 삭혀 만든 것이지만 이제 500g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커다란 장독이라도 있어야 할 판이다.


5리터들이 통에 담은 동치미. 2018. 9.21.


일부는 그릇에 담가 마셨다. 2018.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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