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의 명성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보게 된 책이었다. 그의 명성은 헛되지 않았다. 그가 말한 내용이 역사적 서술로 남아있는 건지 아니면 후대 사람들의 자의적 묘사를 옮겨적은 건지 아니면 츠바이크 그 자신이 상상을 보태 만든 묘사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그의 서술은 자세했고 웅장했으며 운명적인 데가 있었다. 다음의 묘사를 보라.
"발보아는 성 미카엘처럼 무장하고 검을 차고서 장엄한 의식처럼 새로운 바다를 소유하려했다. 그는 곧장 물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치 물의 주인이자 지배자인 양 오만하게 나무 아래에서 쉬면서 기다렸다. 파도가 밀려와 순종하는 개처럼 혓바닥으로 자신의 두 발을 쓰다듬을 때까지." (35쪽)
"이 도시는 이미 십자군의 유해까지도 약탈당하고, 거듭되는 페스트에 상당수 주민들을 잃고, 사막 유목민들의 끊임없는 저항에 지치고, 유럽 민족들간의 싸움과 종교적인 갈등에 찢겨서 자신의 힘으로 적을 방어할 병력도 용기도 키울 수가 없었다 (..) 그래서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드라가스의 보라색 의상은 바람으로 만들어진 외투에 불과했고, 그의 왕관은 운명의 장난일 뿐이었다" (50~51쪽)
꼭 말 잘하는 이야기꾼이 쓴 글 같다. 그런 재기는 이 글을 학생들이나 읽을 만한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대개의 어른들은 역사서나 전기문을 읽을 때 묘사보다는 사실 그 자체만이 나열되어 있기를 원한다) 그런 서술 방식이 츠바이크를 인기의 반열에 올려놓은 게 분명했다. 역사적 사실에 자신의 논평을 덧붙여 단순한 앎을 넘어서게 해주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성격과 행동방식에는 설명하기 힘든 모순이 존재한다. 그들은 어떤 기독교도보다도 경건하고 신심이 깊어서 영혼으로부터 하나님을 부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역사상 가장 잔혹한 비인간적 행위를 저질렀다." (31쪽)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성과 화해의 순간은 항상 짧고 허망했다. 교회 안에서 양측의 음성이 경건하게 공동의 기도 속으로 섞여들고 있는 동안, 밖에서는 벌써 학식 높은 수도사 게나디오스가 라틴 사람들과 참된 신앙의 배신에 반대하는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처 이성이 서로를 합치기도 전에 평화의 결속은 광신에 의해 깨어지고, 정교측 성직자가 진정한 굴복을 생각하지 않았듯이 지중해 저쪽 끝에서 온 친구들도 약속한 도움을 줄 생각이 거의 없었다 (...) 도시는 여전히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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