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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선생의 조건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8. 6. 15.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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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뒤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황현산의 <밤의 선생이다>는 그가 그간 신문 등에 발표했던 짤막한 수필 모음집이다. 저자는 각 글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뛰어난 지성을 바탕으로 써내려 가고 있는데 그 논조에는 다소 서정적인 면이 있다. 부분을 들여다 보면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는 성찰의 경향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글은 큰 틀에서는 분석적이나 세부적인 면에선 감성적이라 할 수 있다. 황현산은 글을 쓸 때 그가 기고했던 신문의 속성을 존중하여 시사성 있는 주제를 많이 다루었는데, 그런고로 그의 수필은 우리가 '수필' 하면 떠올리는 '방망이 깎던 노인'이나 '은전 한 닢'이 일으키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굳이 갈래를 따지자면 중수필에 해당할 것이다.


이 책의 명성을 문학평론계에서 그가 떨치고 있는 위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짤막한 글이지만 문장은 섬세하고 논지는 정연하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길 때 구구절절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걸 그의 글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이 책을 호평한다면 그건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형식이 훌륭해서이다. 사실 오직 내용만을 따져 수준을 논한다면 최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글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신의 말씀을 옮겼다고 전해지는 성경은 물론, 오직 사실만을 논한다는 과학 서적을 가지고도 충분히 논쟁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글의 형식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내용을 완전히 떼어낸 채 평가할 수는 없다. 글은 천성적으로 내용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독자는 그의 담백한 문체에 반해서가 아니라 그의 논지에 동의를 하기에 그의 글에 감탄한다. 게다가 단순한 동의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의 글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이해의 골을 깊게 해주며 어떤 능선에선 깨달음의 빛을 내려주기까지 한다. 그것도 그리 길지도 않은 간결한 문장으로 말이다. 


'선생'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을 생각할 때, 난 '밤'의 선생, 황현산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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