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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하코네 (5) - 세이칸소에 들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6. 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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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칸소는 결코 크다고는 할 수 없는 료칸이었다. 일반 주택으로 치면 3 정도 높이의 건물이었으니 공용탕이나 로비 등을 제외하면 객실을 넣을 수 있는 공간도 충분치 않을 터였다. 객실은 모두 합해 9개 정도. 소박한 분위기에서 일본의 전통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건물의 외부는 반듯했지만 내부는 꽤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족욕탕과 공용탕으로 이어지는 하층은 외부와 연결된 정원과의 배치 때문인지 'ㄱ'자로 꺾인 구조를 하고 있었고 각 층은 서로 비스듬히 맞물리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3층의 복도는 일부가 유리로 되어 있어 3층에서 2층의 계단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이런 유리 구조는 그것 그대로만 보면 일본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지만 긴장과 조화를 중시하는 일본의 전통에서 보자면 오히려 또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오카미[각주:1]가 옆에 있었다면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좁은 복도 옆에 유리를 설치한 것이라 설명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좁은 복도의 유리벽을 지나칠 때의 긴장감이 우리에게 생의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며. 과하게 느낄 수도 있는 해석이지만 일본 전통 문화에서 이런 식의 의미 부여는 드문 일이 아니다.


현관에서 응접실을 거쳐 3층으로 이어지는 모든 복도에 다타미[각주:2]가 깔려 있었다. 족욕탕과 공용탕으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다타미 대신 판재를 깔아 물기에 대비하였고 공간의 각 모서리에는 종이 조명, 도자기 같은 장식물을 배치하여 일본 특유의 감각을 끌어 올리려 하고 있었다. 1층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이 있었는데 탁자에 작은 연못이 꾸며져 있었다. 현대의 호텔 양식을 기본 구조로 하되 내부 장식은 일본 전통에 맞춘 듯했다. 도코노마[각주:3]로 여길 만한 공간도 보이지 않았으니 역시 전통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정정차림의 중년 남성의 안내를 받으며 그곳에 앉아 숙박계를 확인했다. 전통을 따르는 료칸이라면 여성인 오카미가 나와 첫 응대를 했겠지만 세이칸소는 건축과 인테리어의 형태처럼 전통 료칸과는 조금 상이한 모습을 보였다. 남성 지배인이 있는 료칸도 상당히 많아졌기에 이제 이 방식을 새롭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우리는 예약 내용을 확인한 후 2층의 객실로 자리를 옮겼다. 2층의 현관문을 열고 화장실을 지나 후스마[각주:4] 형태의 미닫이 문을 열자 다타미로 꾸민 방, 와시츠[각주:5]가 나왔다. 바닥에는 방형의 다타미가 16첩 깔려 있었는데 각각의 다타미에는 마감용으로 대는 천인 다타미베리[각주:6]가 박음질되어 있지 않아 다소 소박하게 느껴졌다. 방 가운데에는 차탁과 자이스[각주:7]가 놓여 있었는데 지금 보니 차탁은 코타츠[각주:8] 겸용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와시츠와 침실은 쇼지[각주:9]를 경계로 구분되어 있었고, 침실 옆에는 유리문으로 연결되어 방에서도 훤히 보이는 개별 노천탕이 있었다. 다른 것보다도 욕조가 나무로 되어 있다는 특색 때문에 세이칸소를 예약한 터라 다른 곳보다 더 유심히 살펴 보았다. 일본에서 '로텐부로'라 부르는 노천탕은 일본의 일반적인 가정처럼 목욕탕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었고 거의 항상 물에 닿는 공간임에도 공간 전체가 목재로 꾸며져 있었다. 나무로 짠 욕조를 둔 욕실은 내가 구상하고 있는 공간 중 하나였으므로 구조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방부목이 아닐 텐데 어떻게 나무가 썩지 않고 버티는지 궁금했다. 목재는 히노끼[각주:10]로 보였고 옹이가 전혀 없는 걸 보니 상급 히노끼였다. 욕조 바깥에는 곧은 결의 히노끼를 사용하고 안쪽에는 곡선의 결이 보이는 히노끼를 사용하여 차이를 두고 있었다. 햇빛이 내리쬐는 공간이었으므로 탕 내부에 이끼가 엷게 끼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였다. 확실히 관리는 쉽지 않아 보였다. 혹여 나무가 썩더라도 쉽게 뜯어서 교체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할 듯했다.


노천탕 앞쪽으론 산림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위쪽으로 하늘이 보였다. 단점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에는 모든 게 마냥 좋아 보였다. 해가 진 후 아내는 탕에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말했다.


"머리 위로 북두칠성의 국자가 보여."


아내의 머리 위로 북두칠성이 떠 있을 때 그 앞에는 밝은 별 하나가 홀로 떠 있었다. 그때는 그 별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금성이었을까? 아내는 위쪽을 올려다보며 북두칠성이 있다고 했다. 그걸 단서로 생각해보면 홀로 떠 있던 그 별은 거문고자리의 베가였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날이 흐렸는데 밤이 되자 구름이 조금 걷히는 듯했다.


우리가 객실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되어 '나카이'라고 칭하는 기모노 차림의 여직원이 들어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해주기 시작했다. 헤야쇼쿠[각주:11]였다. 우리는 서둘러 차탁에 둘러 앉았다. 이렇게 가이세키[각주:12]가 시작되었다.


세이칸소의 입구에 있는 작은 간판. 서체가 마음에 든다. 가나가와현 하코네, 2018. 5.24.


세이칸소의 응접실. 작은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꽃을 띄웠다. 가나가와현 하코네, 2018. 5.24.


와시츠에 깔려 있는 다타미. 다타미베리가 생략되어 있다. 가나가와현 하코네, 2018. 5.24.


미닫이문인 쇼지의 바닥쪽 문틀. 경계부이지만 트인 공간이기도 하기에 발이 걸리지 않도록 문틀이 바닥 안쪽으로 들어가 있다. 가나가와현 하코네, 2018. 5.24.


개인 노천탕. 목재로 된 노천탕을 찾다가 세이칸소를 선택하게 되었다. 창은 시원할 정도로 크기 않지만 풍경을 감상하기엔 넉넉하다. 가나가와현 하코네, 2018. 5.24.


가이세키 용도의 그릇들. 아담하며 귀엽다. 가나가와현 하코네, 2018. 5.24.


세이칸소의 2층과 3층 공간. 3층 복도의 일부가 유리로 되어 있다. 가나가와현 하코네, 2018. 5.24.



  1. 여주인 겸 총지배인 [본문으로]
  2. 국내에선 '다다미'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다타미'가 옳다. [본문으로]
  3. 바닥보다 한층 높게 만든 일정한 공간으로, 보통 벽에는 족자를 걸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을 놓아 둔다. 의례적인 공간이다. [본문으로]
  4. 벽을 대신하여 다다미방 실내의 구획을 나누는 문. 문에는 보통 맹장지를 발라 그 위에 그림 등을 입힌다. [본문으로]
  5. 다다미를 깔아 놓은 방.응접실, 침실 등 다양하게 활용한다. [본문으로]
  6. 다다미의 끝부분을 감싸는 띠 모양의 천. 이 천의 모양과 색깔에 따라 와시츠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본문으로]
  7. 방에 앉을 때 등을 기대는 다리 없는 의자. [본문으로]
  8. 일본에서 쓰이는 온열기구로, 나무로 만든 상판 아래쪽을 이불로 덮어 만든다. 이불 안쪽에 화로, 전열기 같은 도구를 둬 보온한다. [본문으로]
  9. 나무틀에 종이를 붙인 문으로 방과 방의 경계로 쓰인다. 후스마와는 달리 채광을 위해 얇은 종이를 사용한다. [본문으로]
  10. 우리나라에서 편백나무로 부르는 것과 동일하다. 편백나무의 원산지는 일본이다. [본문으로]
  11. 객실의 식탁에 차려 주는 상차림 [본문으로]
  12. 작은 그릇에 다양한 음식이 조금씩 순차적으로 담겨 나오는 일본의 연회용 코스 요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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