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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미수 혹은 티라미슈의 특별함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11. 18. 02:50

본문

1.

아내에게 커피에 어울리는 디저트를 하나 만들 거라고 했다. 무슨 디저트냐는 아내의 물음에 레시피 중에 빵을 커피에 적시는 부분이 있다고만 일러 주었다. 그런데 아내는 그 말만 듣고 대번에 첫 글자가 '티'일 거라고 답했다. 어떻게 레시피를 알고 있느냐 물으니 예전에 오븐 없이도 만들 수 있는 디저트를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오븐 없이도 만들 수 있는 디저트. 제과와 제빵의 세계에서 오븐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그만큼 제조 과정이 간단하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티라미수는 만들기 수월한 편이다. 달걀 노른자와 설탕을 섞어 빠르게 휘저은 뒤 어느 정도 부풀어 오르면 마스카르포네 치즈를 섞어 크림을 만들고, 사보이아르디 비스킷을 커피에 적신 뒤 그 비스킷 위에 방금 만들어 둔 크림을 얹고 카카오 가루를 뿌리면 끝이다. 


물론 그건 재료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비스킷이 없다면 비스킷을 만들어 내야 하고, 비스킷 대신 빵을 사용한다 해도 적절한 게 없다면 이 역시 오븐에 직접 구워내야 한다. 제대로 된 커피도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따지다 보면 누구든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디저트라는 티라미수도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게 된다. 



2.

티라미수의 레시피는 매우 다양하다. 비교적 현대라 할 수 있는 20세기 중후반에 탄생한 이 디저트는 탄생한 시기가 무색하게도 원조가 누구인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티라미수의 정통 레시피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어느 곳에선 티라미수에 커피 대신 와인을 쓴다고 하고 또 어느 곳에선 비스킷 대신 스페인 빵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레스토랑은 카카오 가루 대신 초콜릿 가루를 쓴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티라미수의 '정통' 레시피를 따른다고 자처하고 있다. 


티라미수는 20세기 후반에 이탈리아 정식 용어로 채택이 되어 <이탈리아어 사전>에 등록되었는데, 이 사전에 나오는 티라미수의 레시피마저 편찬사마다 조금씩 다른 형편이다. 어느 출판사의 <이탈리아어 사전>에는 티라미수를 커피에 적시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다른 출판사의 <이탈리아어 사전>에는 커피와 '술'에 적시는 것으로 나와 있다. 또 어느 출판사는 레시피에 생크림을 포함시켰다가 개정판에서 지우기도 했으며, 차게 해서 먹는 디저트라는 설명을 추가시키기도 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1985년 3월 6일자 <뉴욕 타임스>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티라미수는 어디에서 처음 생겨났을까?) 토스카나? 롬바르디아? 캄파니아? 피에몬테? 베네토? 최근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이탈리아 디저트 티라미수의 기원은 그 제조법만큼이나 알쏭달쏭하다."[각주:1]



3.

티라미수의 여러 레시피들 가운데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는 있다. 달걀과 설탕, 마스카르포네 치즈를 사용하고, 비스킷이나 빵을 어떤 종류의 음료(커피, 와인, 럼 등)에 적시는 과정이 있으며, 완성된 디저트를 숟가락으로 떠먹는다는 것이다. 


티라미수가 해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탈리아 단어 중 5위를 차지했다[각주:2]는 소식에서 알 수 있듯이 논란 속에서도 티라미수의 유명세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자 이탈리아 한 지방에서 티라미수가 자신들의 특산품이라며 인증 마크 발행을 추진하고 나섰다. 물론 다른 지방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티라미수의 기원과 정확한 레시피는 그들의 손 혹은 법정에 놓아 두도록 하자. 내가 티라미수를 만들 때 와인 대신 커피, 사보이아르디 비스킷 대신 빵을 썼다고 해서 그것이 티라미수가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으니. 아, 마스카르포네 치즈의 경우는 조금 애매하다. 이탈리아의 요리학교 교수인 줄리아노 부잘리가 "마스카르포네가 들어가지 않은 티라미수는 티라미수라고 할 수 없다"[각주:3]고 한 적이 있으니. 하지만 당장 가지고 있는 치즈가 없으니 이를 어떡한다? 그렇다면 가장 밀라노다운 치즈, 마스카르포네를 구하기 전까진 내가 만든 이것을 티라미수 대신 티라미슈라 불러야 할까?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는 부르고 싶지 않다. 레시피에 어떤 차이가 있든, 이 디저트의 특별함은ㅡ링구아노토(티라미수의 최초 제조자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부친이 언급했던 것처럼, 그리고 나 역시 동의하는 바대로ㅡ특정 레시피가 아니라 '나를 끌어 올려' 준다는 뜻의 티라미수[각주:4], 그 이름에 있었으므로.



4. 

티라미수를 만들기 전에 스펀지 케이크를 오븐에 구워냈다. 적당한 빵을 구할 수 없으니 직접 만드는 수밖에. 달걀 세 개를 공립법으로 거품을 낸 뒤 설탕 110g을 넣어 충분히 부풀 때까지 계속 섞어 주었다. 그 후 박력분 100g을 넣어 섞다가 급하게 녹인 버터 20g을 넣어 함께 반죽했다. 그리고 반죽을 틀에 넣은 뒤 오븐에서 170도로 25분간 구웠다.


이렇게 만든 스펀지 케이크를 용기 크기에 맞게 자르고 얇게 썰어 케이크 시트로 만들었다. 케이크 시트는 용기 바닥에 깐 뒤 에스프레소를 뿌려 적셔주었다. 꽤 오래 전에 만들어 두었다가 냉동실에 넣어 둔 채 잠시 잊고 있었던 (아내 덕분에 생각이 났다) 슈크림을 녹여 케이크 시트 위에 뿌리고, 이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한 뒤 카카오 가루를 뿌려 마무리했다. 


케이크 시트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틀에 붓는 모습. 2017.11.17.


완성된 스펀지 케이크. 2017.11.17.


티라미수에 넣을 에스프레소 추출. 2017.11.17.


커피에 적신 케이크 시트, 슈크림, 코코아 가루를 뿌려 만든 티라미수. 2017.11.17.


  1. Marian Burros, 'What's Tiramisu? Well, it Depends....', in , 1985년 3월 6일자. 알렉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윤병언 옮김 <맛의 천재> (책세상 2016) 499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2. 유럽연합의 2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2009년)한 결과, 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탈리아 단어로 1위에 피자, 2위에 스파게티, 3위에 카푸치노, 4위에 에스프레소, 5위에 티라미수가 선정되었다. 같은 책, 517쪽 참고 [본문으로]
  3. 같은 책, 499쪽 [본문으로]
  4. 티라미수는 이탈리아어로 'Tira mi su'이며,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 'They pull me' 혹은 'Pick me up' 정도가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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