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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 그 작은 실타래 (1)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10. 25.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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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가 그린 <모당 홍이상 평생도> 중에 '초도호연'이라는 작품이 있다. 양반가의 돌잔치 모습을 그린 것인데, 그곳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여 잔치를 벌이는 게 아니라 집안 사람들 몇몇만이 대청 주변에 모여 있는 소박한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림을 유심히 살펴 보면 돌상에 활과 화살, 책 같은 돌잡이 물품이 올려져 있는 걸 알 수 있다. 돌잡이 중인 것으로 보인다. 아기는 이미 기다란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는데 필시 붓으로 보인다. 돌상으로는 둥근상을 써서 아이가 부딪혀도 다치지 않게 배려한 모습이다. 


돌잔치에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예식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현대에 와서는 더욱 그런 모양새가 되었다. 가령 돌상으로 둥근상이 아니라 교자상을 준비했다 하여 예의에 어긋난다 따질 이유도, 신성함과 정결함을 의미하는 백설기를 올리지 않았다 하여 준비가 부족하다 나무랄 필요도 없다. 수수팥경단이 없다고 하여 아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여길 이유도 없다. 설령 아기가 한복이 아니라 아가방에서 사온 면 티셔츠를 입고 있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돌잔치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삶을 축복하고 앞으로의 생이 순탄하길 기원하는 행사이니 결국 꿈보다 해몽이 더 중요한 까닭이다. 게다가 지금은 주자가례가 지배하는 조선 시대도 아니다. 애초에 전통의 법도를 따지고자 했다면 20세기 초에야 중국에서 들어온 금붙이 선물의 풍속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해야 하겠다. 


축원이라는 것은 다분히 신비적인 행위이니 의미 전달이 중요하다. 그러니 돌상에 올라온 하얀 크림빵을 보고 그 크림이 아이의 신성함과 정결함을 뜻한다고 주장해도 무방한 일이다. 사각의 교자상과 그 위의 둥근 접시는 천원지방을 의미한다고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사실, 차림의 형식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그 의미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만일 돌상에 올라온 크림빵의 하얀 빛깔이 아이의 순수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 그것은 옛 법도를 비웃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돌상을 준비하다가 새삼 과거의 예법을 조소하며 나설 사연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아이의 돌상을 직접 준비하면서도 난 그 일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었다. 성리학의 예가 남아 있는 종갓집에서 보면 대로할 일일까? 하지만 이제 그건 그들만의 예가 되었다. 내가 원했던 건 양식의 완벽한 부활과 답습이 아니라 작게나마 드러난 정성, 그리고 과거 흔적에 대한 작은 공유일 뿐이었다.


<평생도> 중 '초도호연'(부분). 전(傳) 김홍도 작, 1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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