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파트 한 바퀴 돌기(4) - 추석, 결실을 맺는 식물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9. 21. 17:12

본문

추석이 멀지 않았다. 이는 곧 과일이 영글어 간다는 뜻이다. '영글었다'는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으로의 과정. 추석은 태양이 아니라 달을 기준으로 한 음력 8월 15일로 정해지기에 예나 지금이나 수확기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추석을 맞이해야 할 때가 있다. 북쪽 지역으로 올라갈수록 그런 경우는 더 잦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문물의 발달로 그 영향이 크게 줄어 들었지만 과거엔 수확기와 추석이 맞지 않을 때가 많아 추석을 제대로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조선 후기에 이앙법이 보편화되면서 농사력이 한 달씩 뒤로 밀리게 되었으니 그 시대 선조들의 추석맞이는 더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과실이 익거나 말거나 추석은 다가오니 조선 시대 백성들은 부족하나마 준비를 해야 했다. 먼저 익은 것과 더 남쪽 지방에서 구해 온 것으로 제사상을 차리고 애초에 조생종 쌀을 심은 뒤 올벼를 수확하여 추석에 대비했다. 그것도 없다면 덜 익은 반 액체 상태의 쌀이라도 수확하여 추석을 지냈다.[각주:1] 수확 시기의 문제로 밭농사 위주의 이북 지방은 단오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남부 지방은 이앙법 보급 이후 중양절이나 정월 대보름을 더 중시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 조상들은 추석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나 보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그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밤에 한 해의 결실을 일부나마 배부르게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을까. 


추석이 되면 사내들은 수숫잎으로 만든 거북 껍질을 뒤집어 쓴 채 마을을 돌고 돌았으며 아낙네들은 보름달 아래 빛을 맞으며 노래에 맞춰 둥글게 돌고 돌았다. "달아달아 밝은달아 이태백이 놀든달아 저기저기 저달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꾸로 다듬어서 금도꾸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지어 천년만년 살고지고, 강강술래 강강술래......" 옥도끼와 금도끼로 멋집 집을 지어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음엔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그 마음도 강강술래처럼 돌고 돌아 현재에 이르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열매의 맺힘은 여전히 과거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 곧 추석이지만 열매는 아직도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 주변에도 아직 익지 않은 과실들이 보였다. 그래도 추석이 지나면 이들 모두 잘 영글어 다시금 땅에 씨앗을 뿌릴 것이다. 그러면 다시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오겠지. 그땐 제자리라도 빙빙 돌며 이런 노래를 불러 볼까. "다시여름 다시겨울 돌고돌고 돌고돌아 다시가을 다시추석 아이크고 우리늙니 그때에는 우리마음 나이만큼 풍성할까, 강강술래 강강술래......" 


아내가 주목에 열매가 열렸다고 알려 주었다. 나가 보니 안이 비어 있는 붉은 열매가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서울, 2017. 9.19.


연한 녹빛의 대추나무 열매. 지금 맛보아도 아삭하니 맛있다. 서울, 2017. 9.19.


분꽃의 검은 열매. 안에 노란색의 씨앗이 있는데 그 씨앗은 하얀 가루로 채워져 있다. 분을 바를 때 쓰는 듯한 하얀 가루. 그래서 분꽃이다. 서울, 2017. 9.19.


지하철 타러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석류 열매. 생각만 해도 입안이 시큼해진다. 서울, 2017. 9. 7.


보통 방아잎이라 부르고 있는 배초향. 외국에는 한국 허브(Krean herb)로 알려져 있다. 잎에서 좋은 향이 난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서울, 2017. 9.19.


붉게 잘 익은 꽃사과.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서울, 2017. 9.19.


의외로 포도나무도 있다. 다만 봉지에 싸여 있어 열매를 볼 수는 없었다. 큼지막한 잎을 볼 때면 루마니아 요리인 사르말레가 떠오른다. 서울, 2017. 9. 7.


감나무. 아파트에 감나무가 여럿 있다. 빨갛게 익은 건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서울, 2017. 9.19.


덩굴식물인 유홍초. 꽃자루 부근에서 열매가 서서히 커가고 있었다. 서울, 2017. 9.19.


목련의 붉은 열매.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열매가 벌어지고 남은 곳에 붉은 씨앗이 매달려 있었다. 서울, 2017. 9.19.


  1. 참고자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저, <놀이로 본 조선> (글항아리 2015) [본문으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