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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나간 건축물, 그 단면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9. 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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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실공사로 인한 사고가 서울에도 몇 번 있었다. 아파트 부실공사로 유명한 건 단연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이다. 6.25 이후 서울로 밀려드는 인구는 곳곳에 무허가 건물들의 난립을 야기했는데, 이들은 미관상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염병, 화재에도 취약해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1966년 1월에 남산동 판자촌에서, 5월에는 숭인동 판자촌에서 화재가 발생해 수천 명이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하자 서울시는 본격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부산직할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불도저'로 유명세를 떨친 덕에 서울시장으로 곧장 발탁되었던 김현옥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현재의 성남시(당시엔 광주군)에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고, 서울의 산 주변엔 시민아파트를 400여 채 지어 사람들을 대거 이주시키기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으로 인해 일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수백 동의 아파트가 서울 전역에 세워졌는데, 그때 만들어진 시민아파트 중 하나가 마포구 와우산의 비탈길을 깎아 만든 와우아파트였다. 

삽을 뜬지 6개월만에 준공되었다가 3개월만에 붕괴된 이 아파트는 여러 부분에서 졸속으로 지어졌는데 그 중 하나로 콘크리트라 부를 수 없는, 모래와 자갈을 대충 섞어 만든 '반죽'을 들 수 있다. 콘크리트 공법상 모래와 자갈을 섞는 것은 맞지만 시멘트는 거의 쓰지 않고 모래와 자갈 위주로 콘크리트를 만들어 강도가 너무 낮았다. 당시 이런 날림 공사가 만연하였고 그 때문에 안전진단 결과 대부분의 시민 아파트가 하나씩 철거되어 지금은 회현동에 있는 회현시민아파트 단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이후 93년에는 우암상가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우'자가 들어가는 아파트는 '우르르' 무너진다는 속설이 생기기도 했으니,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근처에 있던 우미 아파트를 지날 때마다 근심어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2.

몇 번의 건축법 개정 이후에도 유사한 사고가 매번 발생하여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그때만큼 잦은 빈도수는 아니지만 부실 시공에 관한 뉴스를 듣는 게 여전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엔 대체 건물을 어떤 식으로 지었던 걸까? 

내가 종종 지나가곤 하는 지역 한 곳엔 도로와 인도를 비정상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건축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 건물 때문에 사람들은 인도를 걷다가 도로로 내려가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 건물은 건물 바깥쪽에 기둥 몇 개를 세운 뒤 지붕을 살짝 얹은 귀여운 수준의 불법 증축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건물이 통으로 도로와 인도를 심각하게 점유하고 있는 실로 당당한 점거를 하고 있었다. 너무 대범하게 침범하고 있어 오히려 도로 설계를 잘못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였다.

오랜 기간 동안 건물의 처리 여부를 놓고 입씨름을 했지만 원만한 합의가 되지 않았나보다. 몇 주 동안 노란색의 접근 금지선이 쳐져 있던 그 건물을 저녁이 되면 검은 양복의 덩치 큰 사내들이 교대로 지키기를 며칠. 결국 강제 집행을 당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지나가면서 보니 건물의 절반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날카로운 톱에 잘린 나무처럼 아주 매끈하게 잘려 있었다. 어떤 장비를 이용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건물을 그런 식으로 자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정도 전의 모습. 사진 속 붉은 건물은 도로와 인도로 쓰여야 할 공간을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이 건물의 오른쪽 절반이 사라지고 없다. 네이버 스트리트 뷰 제공.


3.

건물이 매끈하게 잘린 덕분에 모형이 아닌 실제 건물의 단면을 직접 구경해 볼 수 있었다. 건축물대장을 살펴 보니 95년도에 준공된 건물이었다. 건축법이 많이 보완된 이후에 준공된 건물이라 그런지 심각한 하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지금도 문제가 되곤 하는 단열재와 창호의 기밀성 부족은 이 건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루는 일부 들떠 있었고 방통 평활도도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보고만 있는 데도 겨울밤의 추위가 느껴졌다. 이렇게라도 허물어진 뒤 더 좋은 건물로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주택 2층 바닥의 단면. 발포 스티로폼 위에 콩자갈을 올리고 그 위에 와이어 메쉬, 다시 그 위에 난방 배관을 깐 뒤 모르타르로 마무리 한 것이 보인다. 단열재는 일부 균형이 맞지 않았고 비어 있는 곳도 있었다. 서울, 2017. 9. 7.

창호 부근. 창호와 벽 사이를 기밀시공하지 않아 들떠 있는 게 보인다. 단열재도 제대로 시공되어 있지 않아 겨울이면 이곳으로 찬 바람이 들이쳤을 것이다. 방습지 같은 건 아예 보이지 않았고 빗물받이(후레싱)도 되어 있지 않아 장마철이면 빗물이 벽 안쪽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서울, 2017. 9. 7.

1층부의 모습. 콘크리트와 외벽 사이에 있어야 할 단열재가 보이지 않는다. 설계상 오류가 있었는지 창호 위쪽엔 빈 공간이 보인다. 외벽을 가로로 뉘여 막아보려 했으나 그럼에도 뜬 공간이 생겼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2층 창호로 스며든 물이 빈 공간을 타고 흘러내려와 1층 창호와 내벽을 적셨을 것이다. 당연히 찬 바람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 2017.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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