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에서 열린 2017 경향하우징페어엔 다양한 업체들의 물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바닥재, 단열재, 지붕재, 외장재, 도어, 창호, 벽난로 등등. 목재 작업대나 정원 관리도구 같은 물품들도 판매 중이어서 눈길을 끌었는데 내가 우선적으로 관심 있던 건 자재가 아니라 건축물이었으므로 그런 물품들에서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는 본래의 목적물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곳에서 쉽게 한눈팔다간 정작 보고 싶었던 건 보지도 못한 채 금세 지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옆에 있는 아내와 어린 아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넓은 공간을 약도도 보지 않은 채 낙천적인 생각으로 돌아다니다가 몇 개의 건축 모형이 늘어서 있는 곳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어렵사리 찾아낼 수 있었다. 일반적인 카페인 줄 알고 슥 지나친 곳이었는데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보니 그 앞에 작은 건축모형들이 죽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그래도 헛걸음하지 않았다는 기쁜 마음에 폼보드, 포맥스 등으로 만든 작고 하얀 건물들을 허리를 숙여 들여다 보고 있는데 문득 누군가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젊은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내가 보고 있던 건축 모형의 특징들을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거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경계심을 지닌 채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바로 그 모형을 제작한 건축가였다. 그녀는 자신이 JTBC에서 방영했던 <내 집이 나타났다>에 건축가로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난 그 프로그램을 거의 빠짐없이 시청한 애청자였지만 겉으론 별 내색을 하지 않은 채 공연히 고개만 끄덕이다가 그제야 플래카드에서 그녀의 이름을 살펴 보았다. '감은희 소장'이라는 이름과 직함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중목구조 건축전문가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내 집이 나타났다>에서 선보였던 중목구조는 모두 그녀의 손을 거친 듯했다.
<내 집이 나타났다>를 시청할 당시 난 왜 모든 집을 중목구조로 짓는 것인지 의아스러워 했다. 중목구조는 나름의 장점이 있었지만 모든 집을 그렇게 짓는 것은 한옥을 제외한 국내 목조 주택이 대부분 경량목구조라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으로 보였다. 결국 경량목구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건축주의 현실, 즉 비용의 문제를 중목구조는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도 그 프로그램은 모든 설계를 중목구조로 하여 아쉬운 마음을 남겼다. 아마도 중목구조를 앞으로 국내에 보급시키고자 하는 포부와 중목구조만의 빠른 시공성이 프로그램의 성격에 우선적으로 맞아떨어졌던 게 아닐까 싶었다. 경주에서 일어났던 지진도 중목구조를 선택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과거 그런 생각을 했었기에 그녀에게 중목구조는 경량목구조에 비해 비용 산정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걸 살짝 언급해 보았다. 돌아올 답이야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만남(그 장소에 건축가가 있으리라곤 미처 예견하지 못했다)에 마땅히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난 그녀를 어색하게 세워둔 채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도중에 내가 '제주도'라는 말을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그녀가 반색하며 "제주도에 집을 지으실 예정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제주도에도 집을 지어본 이력이 있다고 했다. 제주도라는 단어 하나에 감정을 드러내는 걸 보니 그녀는 제주도를 참 좋아하는 듯했다. 나도 좋아하고 싶은 곳이긴 하다. 값비싼 대지만 아니라면 말이다.
"생각해 보니까 건축가를 직접 눈앞에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네. 본 것뿐만이 아니라 이야기까지 나눴잖아?"
그녀와 헤어진 뒤 근처 의자에 앉아 쉬다가 혹여 다른 사람이 들을까 목소리를 가득 낮춘 채 아내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말하고 나자 마치 떠나고 난 뒤에야 생생히 다가오곤 하는 과거의 설렘처럼 생소하고도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했다. 건축가와 건축사는 자격증이라는 면허로 이름이 나뉘지만 그들은 면허를 지니고도 스스로를 건축사라고 부르지 않았으니, 그런 자부심을 지녔을지도 모를 한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괜스레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일반적인 형태의 협소주택. 마당을 조성하기 어려운 도시에 어울리는 형태이다. 경향하우징페어, 2017. 7. 2.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설계 모형. 분리된 듯 연결된 두 개의 공간, 복층구조, 대각선형의 맞배지붕이 인상적이었다. 외부 복도는 두 개의 공간을 독립시켜 고대 로마의 사적 공간인 큐비큘럼을 떠오르게 했다. 경향하우징페어, 2017.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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