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스포츠플러스' 채널에서 방영하기 시작한 대한검도회의 검도 홍보 영상이 상당한 비난을 받고 있는 중이다. 실로 칭찬을 거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혹평만이 이어지고 있는데, 난 해당 영상을 며칠 전에야 만나 볼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방송을 틀어 놓은 채 이런저런 일을 하던 중 막간에 나오던 그 영상을 우연찮게 보게 된 것이다. 영상은 보통의 광고가 그렇듯 20초도 안 될 듯한 짧은 분량이었는데 직접 보니 꽤 무난해 보였다.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영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관된 악평을 들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해당 영상은 왜 비난 일색의 평을 받고 있었던 것일까? 인터넷 검도 커뮤니티에 올라온 비판글들을 다시 한번 읽어 보다가 그 글들에 나와는 다른 몇 가지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로 해당 영상이 홍보하고자 하는 대상 파악에 차이가 있었다. 비판글 중 상당수는 2015년에 도쿄에서 열렸던 세계검도선수권대회(World Kendo Championship. 이후 WKC로 약칭)의 홍보 영상과 이번 광고 영상을 비교하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이 이번 홍보 영상과 내년에 인천에서 열릴 WKC의 홍보 영상을 거의 동일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인천에서 열릴 WKC와 이번 홍보 영상엔 별 연관이 없었다. 홍보 영상엔 인천의 WKC를 언급하는 어떤 말도 없었고, 단지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젊은 사람들이 일과 다이어트와 학업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검도로 푸는 듯한 내용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번 홍보 영상이 가벼운 취지로 만들어진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홍보 대상이 (기존의 검도인이 아니라) 10대에서 30대의 젋은 세대라면 스포츠 홍보 영상이 통상 추구하던 숭고한 이미지를 답습하여 15초를 진지하고 엄숙한 장면으로 채우기보다는 요즘 세대의 선호에 맞춰 가볍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번 TV 광고를 목적과 대상이 상이한 일본의 WKC 홍보 영상(인터넷 방영분)과 비교하여 질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면 평가의 균형이 적절치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해당 영상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호하다는 입장에 차이가 있었다. 분명 메시지가 모호한 면은 있었다. 그러나 그 모호함은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따라서 방향성을 잃은 불분명함이 아니라 궁금증을 일으키는 자극으로 보아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광고기획자는 그 궁금증을 '호구'라는 단어의 이중성을 이용하여 만들어 내고자 했다. 요즘에 유행하고 있는 '호갱'이라는 단어에서 살필 수 있듯이 '호구'는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사람을 일컬을 때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검도에서 호구는 '보호구'란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그러니 광고기획자는 이 동음이의어를 이용하여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시도는 다음과 같은 비판, 즉 시청자들의 호기심은 광고가 끝나는 동시에 사라지고 말 것이며 따라서 광고의 의미는 계속 애매하게 남을 것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광고는 모든 시청자를 노리지 않으며 대상을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광고는 존재하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호성을 혹평의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셋째로 광고가 표방하고 있는 무게의 인식에 차이가 있었다. 해당 홍보 영상이 크게 비판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검도가 너무 가볍게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량 음료나 스낵 광고를 보는 듯한 영상의 가벼움은 적지 않은 수의 동호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검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긴장감 넘치는 대결, 정적인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이행되는 재빠른 타격, 승리의 희열, 차분한 마음 수련 같은 요소 때문이었는데, 그런 것들이 영상에서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해당 영상은 혹평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검도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그런 무게감만을 강조하는 것이 새로운 홍보 요소로 적당한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해당 영상이 이미 검도를 오래 수련 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WKC 홍보 영상이었다면 승부의 짜릿함과 스릴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서술한 대로 해당 영상은 WKC와는 거리가 무척 멀어 보인다. 해당 영상은 검도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검도를 알리고 그들에게 검도를 권유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면 아직 검도를 잘 모르는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가볍고 즐거운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직장인이) 스트레스, 일단 머리!"라고 외치는 언어유희도 그런 경쾌함의 요소로 보인다. 1
MBC스포츠플러스 채널에서 방영 중인 대한검도회의 검도 홍보 영상(광고정보센터(adic.or.kr), 인터넷본 캡쳐)
이 광고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물이 사용자에 의해 평가가 극단으로 나뉠 수 있다. 사물은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상이하게 달라진다는 게 때론 기이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다. 평가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만장일치란 불가능한 사건으로 수렴한다. 대한검도회와 큰 관련도 없는 내가 굳이 시간을 내어 홍보 영상을 위한 변명을 적은 것은 너무 극단적으로 몰린 듯한 혹평의 반대편에 하나의 저울추를 올려 놓기 위함이다. 물론 그 행위는 단순히 평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영상이 반대편의 평가를 받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그 근거는 위에 간략히 서술하였다.
검도계가 침체되어 있다면 분명 변화가 필요하고, 이번 광고에서 (제작비 때문이든 다른 이유 때문이든) 변화의 실마리를, 혹은 시작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애석하지만 출판할 수 없습니다>에서 풍자했던 것처럼 <신곡>, <돈키호테>, <심판>과 같은 불후의 명작들도 편집자의 혹평을 받아 출판조차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었으니, 아주 오랫만에 시도된 대한검도회의 이번 홍보 영상도 혹평이 아닌 호평이 어딘가에 있어야만 했다. 적어도 이 영상은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여기에 이런 인식 차이를 논설하여 기존의 여러 비판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분명 혹평은 과한 측면이 있지만 (이미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널리 인식되었듯이) 젊은 사람은 격정적인 법이고 격정적인 사람은 과장을 좋아하니 사람들은 화가 나면 으레 과장을 하는 법이고, 그걸 생각하면 동호인들의 혹평 또한 이해 못할 것이 없다. 또 외부가 아닌 내부 동호인들이 혹평을 남겼다는 점은(대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인 데도) 메시지를 전하는 바가 있다. 비판의 글을 읽다 보면 적지 않은 수의 혹평이 좌절된 기대심리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여전히 많은 동호인들이 검도계에 희망을 잃지 않은 상태라는 방증이 된다. 그들은, 우리는 결국 응원군이 될 사람들이다. 따라서 다음 해에 있을 WKC의 홍보 영상에는 인천의 세계대회개최를 알리는 것을 넘어 세계의 검도인들에게 '내가 이런 멋진 운동을 하고 있구나' 하는 자긍심을, 국내 검도인들에겐 새로운 희망을 채워줄 수 있는 좋은 결과물이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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