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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의 성질과 올바른 사용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6. 1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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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 중의 하나인 금성은 아름다운 반짝임으로 오랫동안 추앙 받아 왔다. 그리스 신화에서 금성을 미의 여신으로 신격화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의 금성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 찰리 채플린의 말이나 아는 것이 병이라는 우리의 속담은 금성에겐 참으로 적절한 금언인 셈이다. 

 

사실 금성은 육중한 대기압이 내리누르는 펄펄 끓는 대지 위에 유독한 황산의 비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끔찍한 곳이다. 금성의 대기는 황산 구름으로 덮여 있는데, 이 구름에서 내리는 황산의 비는 지표면으로 떨어지면서 가열되다가 섭씨 300도에 이르면 삼산화황과 물로 분해되고, 삼산화황은 이산화탄소와 산소로 해리되었다가 여러 작용을 거쳐 다시 대기 상층부로 올라가 황산 구름이 된다. 이 끝없는 반복이 아름다운 별 금성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서도 이런 산성비가 내리곤 한다. 예전엔 뉴스를 통해 산성비의 심각성이 종종 전파되기도 했는데 이제는 미세먼지에 가려서인지 언론에서 산성비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 않게 되었다. 지구에 내리는 황산의 산성비도 금성에서 일어나는 반응과 비슷하다. 공장에서 내뿜는 이산화황이 산소와 만나 삼산화황이 되었다가 수증기와 결합하여 묽은 황산 물방울이 되니, 이것이 곧 비가 되어 내리는 것이다.

 

금성과 지구에서 내리는 황산의 비를 언급한 것은 다름 아닌 황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얼마 전 황산에 대해 쓰고 난 이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황산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황산을 직접 다루는 직장인들이었는데, 황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학 전공자가 아닌 듯했다. 그들은 머지 않은 미래에 예고된 불행을 맞이하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또 학교에서 배운 황산의 탈수 반응 실험을 직접 따라해 보려는 어린 학생들도 일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조금 더 서술해 보기로 했다. 멀리서 보는 게 좋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건 황산을 아예 접할 일이 없을 때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직접 금성에 가야 하는 우주인이라면 금성의 황산 대기에 대해 알아야 하고, 우리가 직접 황산을 다루어야 한다면 사용 시의 주의사항에 대해 알아야 한다. 모르는 건 결코 약이 될 수 없다.

 

 

2.

진한 황산(농도 약 98%)은 다루기 위험하기 때문에 보통 묽게 희석해서 사용한다. 황산을 묽은 황산 수용액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물을 섞어야 하는데, 이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주의사항은 절대 황산 위에 물을 붓지 말라는 것이다. 비커에 물을 먼저 담은 뒤 그 후에 희석할 황산을 조금씩 흘려 넣어야 한다. 이유는 황산의 비중이 물보다 크기 때문이다.

 

물에 황산을 넣으면 황산이 두 단계를 거쳐** 완전히 해리(이온화)되면서 전체적인 엔트로피가 증가하게 되고, 그 엔트로피 증가분만큼의 발열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때 황산 '위에' 물을 부으면 비중이 작은 물이 황산 위에 뜨게 되고 그에 따라 발열반응이 한 곳에 집중되어 물이 순식간에 끓는점에 도달하게 된다. 물이 끓어오르면서 생성된 거품들은 마구잡이로 터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황산 용액과 뜨거운 물이 밖으로 튀어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황산과 물을 섞을 땐 비커에 물을 먼저 넣은 뒤ㅡ황산 용액이 튀지 않도록ㅡ비커 옆면이나 유리 막대 등을 이용해 황산을 서서히 흘려 넣어야 한다. 이때에도 동일하게 발열반응이 일어나지만 비중이 큰 황산이 곧바로 물속으로 가라앉으면서 열이 사방으로 분산되기에 격렬한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3.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실온 상태의 진한 황산은 강산이 아니다. 위의 경우처럼 황산을 물에 용해시켜 묽은 황산 수용액으로 만들어야 강산이 된다. 실제로 진한 황산의 pH는 7 정도로 중성을 나타낸다. 진한 황산을 물과 섞어야 비로소 수용액 속에 H₃O+가 다수 나타나며 강산의 성질을 띠게 된다. 

 

그런데 황산을 물로 묽혔다고 해서 무작정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황산은 진한 상태일 때 강력한 탈수작용과 발열반응을 일으키는데, 묽은 황산 수용액이라 할지라도 농도에 따라 얼마든지 치명적인 탈수작용을 '여전히'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황산이 물과 반응할 때 유독한 가스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다른 물질과 반응할 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진한 황산에 구리 조각을 넣으면 구리가 산화하면서 이산화황이 기체로 발생하게 된다. 다음 식은 그것을 표현한 것이다.

 

 

강산을 띠는 묽은 황산 수용액은 자연스럽게 생성되기도 한다. 중고교 기본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설탕(C12H22O11)과 진한 황산의 반응을 생각해 보자. 이때 진한 황산은 순식간에 설탕에서 물 분자를 흡수하여 스스로 이온화하는 동시에 설탕은 검은 탄소(C) 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데, 그 과정을 다음의 반응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중고교 과정에서 진한 황산과 설탕의 반응은 위의 관계식 하나로 대체된다. 진한 황산이 설탕 분자에서 물을 어떻게 빼내는지를, 설탕은 왜 탄소 덩어리가 되어 버리는지를 위 식을 통해 보여주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의 반응은 더 복잡하게 일어난다. 우선 화학 반응을 통해 생성된 물은 진한 황산과 만나 묽은 황산 수용액이 되고 그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발열 반응이 또다시 일어나게 된다. 또 생성된 탄소는 산소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가 되기도 하고, 이 이산화탄소가 다시 설탕과 반응하여 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황산의 탈수 과정도 발열 반응이므로 이곳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기가 솟구쳐 오르게 되는데, 이 열기는 생성된 물을 격렬하게 끓어오르게 하여 이들을 순식간에 수증기로 만들어 버린다. 이 과정에서 황산 기체 또한 일부 기화한다. 이처럼 진한 황산과 설탕의 반응은 복잡하지만 그 이해에는 대학 교육 이상의 지식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소량이더라도 황산 기체가 스며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내에서 작업할 때에는 반드시 환기를 해야만 한다. 방독마스크도 유용할 것이다.]

 

 

4.

이제 관건은 묽은 황산 수용액을 가열하며 쓰는 일에 관한 것이다. 묽은 황산 수용액을 가열하여, 심지어 끓여가며 (그것도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열 행위는 액체의 증발 현상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액체는 기체로 증발(vaporization)하려는 성질이 있다. 예를 들어 물과 에탄올을 유리판 위에 동시에 한 방울씩 떨어뜨려 놓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에탄올이 먼저 증발하고 그 뒤 물이 증발하게 된다. 에탄올이 물보다 증기압이 높기 때문에 먼저 증발하는 것이다. 황산은 증기압이 무척 낮은 비휘발성 물질로, 실온에서 거의 자연 증발하지 않는다. 같은 강산인 염산이 쉽게 증발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염산에 비해 황산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 성질 때문이며, 작년에 경북 지방에서 황산 유출사고가 났을 때 "황산 자체는 공기중에 퍼지지 않는다"***라는 보도가 나온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황산에 열을 지속적으로 가하면 (모든 액체가 그렇듯이)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증기압이 높아져 증발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한 실험에 따르면 진한 황산의 경우 동일한 조건에서 똑같이 가열을 하였을 때 수돗물보다도 증발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더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은 실온 상태의 진한 황산은 자연적으로 휘발하지 않지만 묽은 황산 수용액은 다르다는 것이다. 황산 수용액의 농도가 낮아질수록 황산 수용액의 증기압은 급격하게 높아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230도씨로 가열된 98%의 진한 황산은 증기압이 10mm/Hg에 가깝지만, 이것의 농도가 92%로 떨어지면 증기압이 순식간에 200mm/Hg로 치솟게 된다. 이렇게 높아진 증기앞 때문에 SO₃는 공기중으로 기화하게 되고, 이 증기는 수용액에 다시 흡수되지 않은 채 대기를 떠돌게 된다. 즉 황산이 공기중으로 퍼지지 않는다는 주장은 실온 상태의 진한 황산일 경우에만 옳은 셈이다. 끓고 있는 상태의 묽은 황산 수용액은 공기 중으로 쉽게 퍼질 수 있다.

 

순수한 액체는 끓기 시작하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나 혼합물은 순수할 때보다 끓는점이 높아지고 끓기 시작해도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소금물은 100도가 아니라 102도에서 끓기 시작하고 끓는점도 계속 올라간다. 마찬가지로 묽은 황산을 계속 끓이게 되면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즉 묽은 황산의 끓는점은 100도를 넘을 것이고 온도는 황산의 끓는점을 향해 계속 올라가게 될 것이다. 이 경우엔 이미 언급한 바대로 자연 증발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화가 일어나게 되고 따라서 황산 증기가 원래보다 더 빠르게 퍼지게 된다. 물론 그 농도는 처음엔 무척 미미하겠으나 작업자가 그 사실을 모른 채 계속 좁은 실내에서 환기 없이 오랫동안 작업한다면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은땜 과정에서 발생한 산화물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묽은 황산 수용액(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황산 대신 일본식 표현인 '유산'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은 물과 진한 황산을 9:1 정도로 섞어서 만든다. 진한 황산보다는 현저히 안심할 수 있는 상태의 수용액이지만 점액 부위(예를 들어 눈, 입, 상처 등)에 닿는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소량이더라도 폐쇄된 실내에서 황산 증기에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반복 노출되다 보면 기도나 폐 등에 만성적인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 또한 개개인의 민감도에 따라 반응의 정도와 문제가 발생하는 시기, 예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되도록이면 접촉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화학 비전공자가 취미로 이러한 묽은 황산 수용액을 다뤄야 한다면 이 수용액을 끓고 있는 채로 놔두지 말라는 것이다. 금속 산화물의 빠른 제거를 위해 묽은 황산 수용액을 가열해야 한다면 적당한 온도에서 가열을 멈추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환기에 신경 써야 한다.

 


* 초등학생도 쉽게 강산을 구매할 수 있는 현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마트에서 칼이나 락스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위험성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것은 위험 물질의 해악을 미리 알리고 그에 관한 윤리의식을 가르치는 일이다.

** 황산이 강산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황산이 물속에서 거의 완전 이온화되어 매우 많은 양의 H₃O+(보통은 쉽게 H+로 표기)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황산 수용액의 이온화는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나는데 HSO4-로 가는 1차 이온화만이 거의 완전히 일어나고, SO42로 가는 2차 이온화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황산은 1차 이온화만으로도 강산으로 분류되기에 충분하다. 

*** 손대성 기자, "구미·울산 공장서 유출 질산·황산 얼마나 위험하나" (연합뉴스 2016. 6.28) 

 

[참고자료]

1. Material Safety Data Sheet of Sulfuric Acid (American Medical Student Association)

2. "Dehydration of Sugar by H2SO4" by Jeremiah Feducia (NC State University, US) 

3. "The Manufacture of Sulfuric and Superphosphate" by Jenny Simpson, Jonathon Petherick and Lisa Donaldsonh. (New Zealand Institute of Chemistry),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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