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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8) - 마을 한 바퀴 돌기 (2)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4. 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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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지나자 다시 삼거리가 나왔다. 집을 출발점으로 했을 때 거의 반원을 그린 셈이다. 이제 다시 왼쪽으로 꺽어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갔다. 큰길로 나와 집 쪽으로 걸으니 시흥마을회관이 보였다. 그 앞에는 후박나무 두 그루가 부부처럼 서 있었고, 그 뒤쪽으론 보호수인 팽나무가 서 있었다. 팽나무를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나를 할머니 한 분이, 그 오른편에 놓인 건물 안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할머니가 계신 건물을 살펴보니 아주 작은 마을 슈퍼로, 간판도 없었다. 물건을 조금 팔아드리고 싶어 안으로 들어갔다. 적어도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의자에 앉아 계셨는데 내가 들어가도 미동조차 하지 않으셨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넨 뒤 앞에 놓여 있는 다섯 개의 과자 중 두 개를 집었다. "이천 원."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그 말씀에 따라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드렸다. 지폐를 받으며 "고마워요."라고 하시는 말씀에는 온정이 담겨 있었다. 슈퍼를 나와 조금 더 걸으니 출발 장소였다. 

 

이번엔 집 앞으로 나 있는 편도 2차선 도로를 건너 아래쪽(동쪽)에 있는 마을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혼자 돌아다니며 공원에서 운동기구를 타던 제주소년을 만날 수 있었고, 시흥리 마을회관(시흥마을회관과는 다른 성격의 건물이다)도 보였다. 조금 더 걸으니 제주도 동부를 가로지르는 큰 도로인 일주동로가 나왔다. 그 큰 도로 좌우로는 억새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그 너머에 있는 성산일출봉과 함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한참 동안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다시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교차로가 나왔다. 마을 쪽으로 나 있는 시흥상동로를 따라 걸었다. 걷고 있는데 문득 아내가 "무밭이다!" 하고 소리쳤다. 무가 상당수 뽑혀 있는 밭이 옆에 있었다. 아내는 무를 하나 가져가고 싶어했다. 어제 들었던 제주 현지분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런 무는 상품가치가 없어 그냥 버려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대화는 내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난 어제 제주올레길 제1코스의 안내소에 들렀다 만난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했던 것이 떠올라 이렇게 여쭤 보았다.

 

"저번에 보니 무밭에 무가 많이 뽑혀 있던데, 왜 그렇게 밭에 그냥 놔둔 거에요?" 

 

"아, 그건 버리는 거에요. 상품가치가 없어서 못파는 것들이거든요. 그런 무가 나오면 속상하지.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되면 밭을 바로 다 엎어버리고 다른 거 심어버려요. 보고 있으면 속상하니까. 외지에서 이곳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그런 것들도 다 모아서 육지에 있는 자기 부모님, 친척들, 친구들 나눠주기도 한다는데, 그런 것도 한두 번이지." 올레길 안내소의 아주머니가 안타깝다는 듯 말씀하셨다. 그런 아주머니의 말씀에 난 아내를 바라보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럼 그런 거 그냥 주어가도 되나?"

 

"네, 가져가셔도 되요. 버려지는 것보다 가져가서 해드시면 좋죠. 뭐라고 하는 사람 없을 거에요." 내 말에 아내가 아닌 아주머니가 잽싸게 대답해 주셨다. 나는 어제의 그 대화를 상기했다. 

 

"그럼 하나 가져가자." 내 말에 아내는 지체 없이 무 하나를 집어 올렸다.

 

무밭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오른편으로 시흥초등학교가 보였다.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제주올레1코스의 시작점을 알리는 표식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스탬프를 비롯해 안내판, 제주올레의 상징인 '간세'까지. 제주올레 1코스의 시작점이라니, 나름 상징성이 있는 곳이었다. 

 

조금 더 걸으니 예쁘장하게 꾸민 일본풍의 집이 나왔다. 카페이자 숙박업소인 '도로시게스트하우스'와 일반음식점인 '혼자돼지'였다. 혼자돼지는 영업을 한지 이제 이틀이 된 가영업 상태의 음식점이었다. 그곳에 들렀다가 식사를 하며 젊은 주인분 내외와 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주올레1코스 안내소에 계시던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눈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첫 타지 사람들이었다. 가게를 나오니 날씨가 제법 쌀쌀하게 변해 있었다. 몇 걸음 걸으니 곧 우리집이었다.

 

임시 주차장이 있는 집. 시흥리, 2017. 4. 4.

 

삼거리에서 밑으로 내려오다 마주친 집. 돌담을 집 지붕과 연결하여 주차장겸 작업장을 만들어 둔 상태였다. 비록 돌담에 얹은 것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지붕을 덮어버리면 건축법상 건축면적에 포함되기 때문에 불법 증축으로 간주될 우려가 있다.

 

 

 

시흥마을회관. 시흥리, 2017. 4. 4.

 

큰 길에서 집 쪽으로 걸어가다 마주친 시흥마을회관. 가까이 가니 할머니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진짜 토박이 제주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화 내용을 알아듣기는 무척 어려웠다. 

 

 

팽나무. 시흥리, 2017. 4. 4.

 

시흥마을회관 앞쪽으로 커다란 팽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딱 봐도 오래된 교목이었다. 오른편으로 작은 슈퍼마켓이 있다.

 

 

후박나무. 시흥리, 2017. 4. 4.

 

팽나무 옆, 그리고 길 건너 앞쪽에는 후박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종종 보이는 걸로 보아 제주도에서는 제법 흔한 나무인 듯했다. 후박나무는 잎이 많고 수형이 보기에 좋아 눈길을 끌었다.

 

 

후박나무에 막 꽃이 피기 시작했다. 2017. 4. 4.

 

귤나무. 시흥리, 2017. 4. 4.

 

집 남쪽 부근에서 발견한 귤나무. 열매의 크기가 참 컸는데, 바닥에 떨어진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근처에 묶여 있던 개에게는 복된 일이다.

 

 

제주 소년. 시흥리, 2017. 4. 4.

 

제주도에 와 처음 본 제주 소년. 까까머리가 밤송이처럼 귀여웠다. 제주소년은 혼자 돌아다니며 여러 운동기구를 탔다. "저 이것도 잘 타고 저것도 잘 타요!" 아이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자랑을 했다.

 

 

마을과 억새밭. 시흥리, 2017. 4. 4.

 

시흥리 마을회관을 지나지 커다란 도로가 나왔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 길 왼편으로는 억새밭이 펼쳐져 있었고 그 너머엔 집들이 모여 있었다. 아내는 처음엔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집들이 참 예쁘다고 했다.

 

 

해송. 시흥리, 2017. 4. 4.

 

교차로를 지나 다시 마을로 들어가는 2차선 도로에 접어들었다. 문득 아내가 이 도로의 가로수에 특이한 점이 있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묻자 아내가 대답했다. "가로수가 해송이야." 

 

 

파치 무. 시흥리, 2017. 4. 4.

 

조금 더 걸으니 무밭이었다. 그곳에서 파치 무를 하나 가져왔다. 파치 무를 집은 아내의 마음이 들떠 있다

 

 

시흥초등학교. 시흥리, 2017. 4. 4.

 

집을 향해 더 걷자 시흥초등학교가 나왔다. 아담한 크기의 건물에서 초등학생의 수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운동장은 무척 커다랗고 진짜 잔디가 깔려 있다. 

 

 

성산일출봉. 시흥리, 2017. 4. 4.

 

도로 왼편으로는 성산일출봉도 보였다. 내가 성산일출봉을 보고 처음 한 생각은 '설악산의 울산바위를 닮았네'였다. 넓은 억새밭과 성산일출봉의 모습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제주올레길 안내물. 시흥리, 2017. 4. 4.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 도로 오른쪽으로 제주올레길의 시설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주올레 제1코스의 시작점을 알리는 표식물이었다. 이곳의 지명이 시작을 뜻하는 시흥리인데, 제주목사가 제주도를 둘러 볼 때면 이곳 시흥리에서 시작하여 종달리에서 순찰을 마쳤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올레 제1코스의 시작점도 이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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