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립제주박물관
제주도 방문 둘째가 되는 날 우린 제주국립박물관으로 출발했다. 날이 다소 흐렸는데 박물관에 도착할 때가 되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기온도 다소 낮고 바람마저 불었기에 난 얼른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뒤 서둘러 박물관 실내로 뛰어 들어갔다.
제주국립박물관에 들어서서 보니 지난 3월 1일에 새롭게 개장했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 이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내부를 돌아보니 외관보다는 내부의 시설들에 상당히 공을 들인 듯했다. 입장료는 무료. 내가 입장료가 무료라고 말하니 안내데스크에 서 계시던 분이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은 전부 다 무료에요!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죠?" 하고 말씀하셨다. 국립박물관이라고 하더라도 기획전시는 유료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기획전시는 열리고 있지 않은 듯했다. 난 과연 그렇군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1시에는 전시해설사분의 전시안내가 예정되어 있었다. 난 아내가 수유를 하러 간 사이 전시안내를 듣기로 했다. 전시안내를 듣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에 불과했지만 해설사분은 5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시실을 돌며 충분한 설명을 해주셨다. 해설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가끔씩 퀴즈도 내주셨는데 조금이라도 짐작가는 부분이 있으면 틀리더라도 열심히 대답해 보았다.
지금껏 전국의 여러 박물관을 둘러 보았는데, 박물관마다 자기 지역의 특색 있는 물품들을 구비하여 중점적으로 소개하곤 했다. 국립제주박물관 역시 제주만의 특색을 강조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고산리 유적을 들 수 있다. 고산리 유적지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물이 발견된 곳으로 중요성이 컸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제주도로 유배를 왔었기에 그 부분 또한 집중 조명하고 있었다. 또 제주의 특산품인 귤과 말, 그리고 전복을 진상하느라 고생했던 백성들의 일화들이 잘 소개되어 있었다. 제주도는 전복이 많이 나고 또 화산암의 굳기가 단단하지 못하여 돌 대신에 전복으로 화살촉과 칼을 만들기도 하였다 하니, 난 관련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다른 박물관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유물들이었다. 제주도하면 해녀가 유명한데, 그와 관련된 조선시대의 기록과 유물들도 잘 소개되어 있었다.
고산리식 토기. 신석기시대. 제주시 고산리 출토, 2012~2015년 발굴
전복껍질 화살촉. 초기 철기시대. 제주시 김녕리 궤네기 동굴에서 출토. 1992년 발굴
개인적으로 유심히 보았던 유물. 이름은 '청동 검 꾸미개'이다. 현대검도에서 보자면 '코등이'와 비슷한 부위의 물건이다. 초기 철기시대
최익현 초상. 채용신이 1905년에 그린 반신상. 종종 보던 그림이었는데 진본이 이곳에 소장되어 있었다. 보물 1510호
<탐라순력도>,1702년 작. 화공 김남길이 그린 제주도의 풍경 및 풍속화. 제주인들의 삶과 역사가 잘 남아 있다. 보물 652-6호
<탐라순력도> 좌측부 확대. 위쪽으로 다수의 말이 보이고 아래쪽으로는 성 안에서의 행사 장면이 보인다. 제주목사 앞에서 무예를 선보이고 있는 듯하다.
2. 해녀박물관
제주도에서의 세째 날, 세화해변 인근으로 가니 해녀박물관 이정표가 보였다. 그리하여 세화해변 다음 코스는 해녀박물관이 되었다. 해녀박물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웅장했는데, 건물 크기만 따지면 국립제주박물관 못지 않아 보였다.
해녀 전문 박물관답게 해녀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집, 옷, 잠수도구부터 해녀들이 등장했던 '대한늬우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보를 통해 해녀에 관한 궁금증을 다수 해소시킬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관심 있게 본 것은 현대적인 해녀 잠수복이 등장하기 이전의 복장들, 즉 물소중이와 까부리를 착용하고 있는 해녀들의 옛 사진들이었다. 오래전엔 그 옷을 입은 채 바닷속에서 30~40분 정도 일하다가 뭍으로 나와 불턱에서 불을 쬐며 몸을 데운 뒤 다시 바다로 들어가 일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당시엔 다리는 그냥 맨살이었고 오리발도 없어서 바다에서 오랜 시간동안 일하기가 불가능했다고 하니, 그걸 보며 우리의 지금 이 편한 시절이 그저 오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박물관 1층에는 해녀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여러 스크린을 통해 방영되고 있었다. 해녀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그때 그 시절의 장비, 해녀의 자부심 등 여러 주제를 중심으로 잘 편집되어 있던 그 영상에서 난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이를 낳은지 사흘만에 물질을 하러 가야했던 사연, 늦은 나이에 물질을 시작한 젊은 새댁의 사연, 다른 해녀들보다 눈이 좋아 한 번에 몇 개씩 소라를 잡느라 집에 늦게 들어갔다가 남편에게 구박 받았던 사연...... 아내가 3층 전망대에서 수유를 하고 있는 동안 난 그 영상들을 하나하나 관람하였다.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에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지 모를 해녀들의 소중한 기록들이었다.
그 근처에서 또 하나의 영상이 송출되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여러 흑백사진들이 페이즈인-아웃 방식으로 바뀌며 전시되고 있었다. 설명을 보니 매그넘 작가인 데이비드 알란 하비가 2014년에 제주해녀를 촬영한 사진이라고 되어 있었다. 난 한동안 그 사진들을 감상했다.
마지막엔 수유를 마치고 내려온 아내와 함께 영상실로 들어가 약 8분 정도 진행되는 영상물을 관람했다. 그곳에서 숨비소리를 비롯하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해녀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애기마당과 할망마당을 비롯한 해녀 사회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영상물 또한 볼 수 있었다.
물소중이. 분홍색으로 물들인 것이 눈을 끈다. 능화무늬 장식이 되어 있다.
3층 전망대의 풍경. 세화해변, 해안, 그리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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