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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3) - 당분간의 거주지, 제주도 시흥리 달하우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4. 1.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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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근처 해변을 잠시 둘러본 뒤 자동차를 타고 한 시간여를 동쪽으로 달렸다. 자동차가 멈춰 선 곳은 우리가 제주도에서 당분간 머물 시흥리의 집, 시흥리 달하우스였다. 베이지색의 스타코 외벽, 아스팔트 싱글을 얹은 지붕, 그리고 건물 앞쪽으로 아담한 마당이 보였다. 마당에는 소철나무와 측백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고, 몇 개의 커다란 돌덩이가 마치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정원을 연상시키려는 듯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옆으로는 빨간 우체통이 예쁘장하게 세워져 있었다. 

시흥리 달하우스는 두 채의 단독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각의 건물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도록 배치하는 일반적인 형태를 따르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즉 A동은 북서쪽을, B동은 남서쪽을 바라보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땅은 북향도로를 접하고 있었는데, 그런 제약사항 때문에 두 개의 건물을 다르게 배치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용한 듯했다.

주변을 살펴 보니 땅이 다소 경사진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경사면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 동쪽에 흙을 채워 옹벽을 만들어 둔 상태였다. 땅이 북향도로에 접해 있었기 때문에 마당을 북서쪽으로 두었고, 대신 거실창을 북쪽이 아니라 동쪽과 남쪽을 향하도록 하여 채광을 확보하는 동시에 도로쪽에서의 사생활 침해를 차단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 살펴 보니 2층을 포함한 건물의 3면에 창을 내둔 덕에 채광과 조망에 문제가 없었다. 집이 경사면에 위치해 있어서 주위의 집들보다 위로 올라설 수 있었고, 그래서 주변 건물의 방해 없이 북향의 단점을 극복해 내고 있었다.

북향의 단점을 여러 면에 낸 창으로 이겨낼 수 있지만 커다란 창이 여러 개일 경우 단열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하지만 제주도는 우리나라 남단에 위치한 섬이기 때문에 강원도나 경기도 북부처럼 단열에 커다란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건축주는 모든 창호를 이중창 대신에 단창으로 설치한 상태였다. 그런데 벽의 두께는 이중창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두꺼웠다. 남쪽이지만 그만큼 단열에 신경을 썼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건물의 외벽에는 단열에 좋은 스타코가 발려 있었고 현관문도 밀폐성이 좋은 코렐 제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방안의 온도는 보일러를 외출로 한 상태에서도 22도를 유지했다. 반팔을 입고 잘 정도는 아니었지만 초봄에 문제가 될 온도도 아니었다.

벽면은 다소 더러워져 있었는데, 단열에 좋은 외장 스타코는 이처럼 오염에는 다소 취약했다. 대충 훑어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남아 있는 게 보였다. 빗물은 암반 위에도 자신이 흘러내렸던 검은 흔적을 남기는 법이니 건물 역시 그 흔적을 피하가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하지만 스타코는 더 쉽게 오염이 되는 듯했다. 건물의 밝은 색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건물에 처마가 없으니 창호에 물받이[각주:1] 시공을 하거나 오염에 강한 자재로 외벽을 마감했어야 하는데 그런 처리 없이 외벽마저 밝은 색으로 하였으니 외벽이 더러워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단독주택은 자동차처럼 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건물 외벽을 더러워질 때마다 청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용도,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좋은 건 예방이다. 하지만 자동차 외장도 잘 닦지 않는 나였기에 건축물 외벽 오염으로 집주인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잠시 거주하는 입장에서 보다 중요한 건 내부의 청결이었다.

건물 바깥쪽에는 외등이 여러 군데 설치되어 있었고 빗물받이도 벽을 따라 여러 곳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내 오래전 기억에 따르면, 예전 구옥에는 빗물받이가 제대로 설비되어 있지 않아 지붕의 모든 면에서 빗물이 흘러내렸었다. 문득 어릴 적에 구옥 마루에 앉아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기억이 났다. 겨울이 되면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은 얼어 고드름이 되었고, 난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몇 개를 떼어서 가지고 놀았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서는 고드름을 보기가 쉽지 않다. 건물마다 설치되어 있는 저 빗물받이 덕이다. 어쩌면 '탓'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를 일이다.

2층의 건물 밖으로는 지미봉이 보였다. 아내는 다른 창으로 성산일출봉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난 욕실에서 샤워를 하며, 욕실에 난 창문으로 지미봉과 그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샤워하며 주변 경치를 바라보기. 일본 오키나와의 어떤 화장실은 화장실 외벽 일부와 천정이 바깥으로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다. 천정으로는 커다란 나무들이 보였고, 일부 나무 기둥과 가지들은 화장실로 넘어와 마치 자신들이 화장실의 일부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며 밖을 바라보는데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분간 머무를 단독주택지의 전경. 스타코 외벽, 아스팔트 싱글 지붕을 한 2층 주택 앞으로 소철과 측백,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는 작은 정원이 보인다. 제주 시흥리, 2017. 3.30.

달하우스의 거실. 제주 시흥리, 2017. 4. 3.

달하우스의 2층 창에서 본 바깥 풍경. 제주 시흥리, 2017. 4. 3.


  1. 현장에서는 흔히 '후레싱(flashing)'이라 칭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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