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처음 들른 제주도의 해변은 삼양검은모래해변이었다. 제주항에 내린 첫날, 큰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 들르게 된 해변이었는데, 해변 이름처럼 검은 모래가 특색이었다. 모래가 많이 날리는지 검은 모래가 내륙쪽으로 날아가 해변 뒤쪽에 있던 의자들 위에 상당히 많이 쌓여 있었다. 이 바다의 풍광은 그 다음에 들른 함덕서우봉해변에 비하면 인상적이지 않았다. 함덕서우봉해변은 비취색의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어 오키나와에서 보았던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었다. 제주도의 바다가 이렇게 맑고 푸르다는 것을 실제로 느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해변에는 사람들도 제법 있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제주도에 도착한 둘째 날엔 김녕성세기해변으로 갔다. 먼저 제주도 북쪽에 위치한 국립제주박물관을 갔다가 다시 동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변을 들렀다. 김녕성세기해변은 함덕서우봉해변처럼 해변 뒤쪽의 모래를 얇은 천으로 막아두고 있었다. 강한 바람으로 모래가 유실되는 걸 막아보려는 심산인듯 보였다. 함덕서우봉해변처럼 보자마자 감탄사가 나오는 풍광은 아니었지만 해변 주위에 늘어서 있는 풍력발전기들, 이른바 풍차들이 김녕성세기해변에 특색을 더해 주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김녕요트투어 장소에도 잠시 들렀다. 아내가 알아본 바로, 아쉽게도 운영이 5월달부라 요트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주변 마을의 골목길을 일부러 돌아다니다가 도착한 곳은 월정리해변이었다. 이곳도 역시 해변 좌우로 풍력발전기들이 늘어서 있었다. 제법 유명한 해변이어서 해변을 따라 많은 상가들, 특히 카페들이 운집해 있었다. 썰물 때라 그런지 해변에 화산암으로 된 바위들이 듬성듬성 올라와 있었다. 멀리서 보면 해조류들이 파도에 휩쓸려 올라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카페들이 늘어선 곳을 그냥 지나갈까 했으나 마침 주차할만한 공간이 있어 그곳에 차를 댄 후 카페에도 들렀다. 카페의 전면창으로 들어오는 바다가, 마치 액자 프레임 속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셋째 날 집을 나서 첫째로 들른 곳은 '소심한책방'이었는데 벌써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래서 곧장 하도해변쪽을 향해 움직였다. '동촌하우스' 근처에 있는 멋진 억새밭을 지나 조금 더 차를 모니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눈에 보이는 바닷가가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져 있었다. 이날 본 첫 바다였다. 하도해변을 가기 위해 제주도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움직였는데, 차로 이동하는 내내 바다의 여러 풍광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해변으로 따지자면 하도해변을 이날 가장 먼저 들렀다고 할 수 있었지만, 바다로 따지자면 이름 없는 바다들이 그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그 다다음 방문들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었다.
제주도의 가장 오른쪽 항구라는 우도도항선대합실을 지나, 차를 멈출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멋진 풍경을 몇 번씩이나 구경하였다. 그중에 기억할만한 곳으로 화산암이 넓게 펼쳐져 있던 해변을 들 수 있다. 도로 옆에는 잔디가 조금 나 있는 절벽이 있었고 그 아래로 화산암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 옆은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였다. 바다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검은 화산암들을 연신 때려내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불리우는 이름은 없었지만 가히 '화산암해변'이라고 할 만했다. 그 근처에 불턱이 두 군데 있는 것으로 보아 해녀들이 작업을 하는 곳인 듯했다. 1
"바다 위에 스티로폼 같은 게 떠 있네. 밑에서 해녀들이 일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아내의 말에 바다를 다시 보니 과연 바다 위에 부표 같은 것이 떠 있었다. 어쩌면 테왁일 수도 있었다. 해녀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 번의 잠수에 몇 시간씩 작업을 하는 해녀들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2
그 다음으로 하도철새도래지를 꼽을 수 있다. 철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도해변을 마주하고 있는 그곳은 갈대밭과 그 뒤로 보이는 지미봉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맞은편에는 하도해변이 있었다. 하도해변은 해변 뒤쪽에 나 있는 잔디밭이 특색이라 할 만했다. 그제야 제주도에도 해변에 잔디밭이 펼쳐져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잔디들은 다소 듬성듬성 드러나 있었는데, 아직 봄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해변의 모래가 날려 잔디를 덮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도해변의 백사장은 밀물로 인해 대부분 물에 덮혀 있는 상태였다.
이제 세화해변을 향해 차를 몰았다. 세화해변은 모래사장의 폭이 좁았고 화산암이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또한 모래가 뭍을 향해 날아오는 걸 막기 위해서인지 해변을 따라 긴 담장을 설치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니 해변이 품고 있는 기본적인 성질, 즉 물놀이를 하기에는 환경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화해변은 지금껏 내가 제주도에서 방문한 해변들 중 사람들로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 그 이유는 물놀이를 하기에 적당한 환경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풍경 때문이었다. 해변을 가로막고 서 있는 돌담은 오히려 포토존이 되어 사람을 부르고 있었고, 그 주변의 유명한 카페들은 세화해변의 인기에 한몫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우리도 그 앞에 있던 카페에 들러 커피와 한라봉차를 마시며 한동안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해변 건너에서 바라본 세화항구는 따뜻한 노을을 머리에 인 채 그날의 하루에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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