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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2) - 산타루치노호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3. 3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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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안을 대충 둘러본 나는 출항을 기다리며 선실에 앉아 있었다. 9시가 되자 배는 자신의 진동과 관성을 내게 보내며 자신의 이동을 알렸다. 망연히 앉아 있던 나는 다소 지쳐 있던 몸을 이끌고 뱃전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배가 섬 주변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잠시나마 보고 싶었다. 아내와 아이도 함께 올라갔다. 강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바닷바람이 불었기에 선체를 방패 삼아 갑판 위에 서서 주변을 감상했다. 인양된 세월호가 옮겨질 신목포항이 어딘지를 살펴보기도 했고 혹시라도 동거차도의 세월호가 보이지 않을까 하여 위치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다시 갑판에서 선실로 들어가자 한 중년 남성이 다소 거친 목소리로 어린 애를 그렇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어쩌냐고 꾸중하며 지나갔다.

"내일 소아과를 가게 될 거야!" 그는 복채를 조금 받아 언짢아진 점쟁이 혹은 주신에게 배반당한 신관의 대리인이 되어 내게 소리쳤다.

배 안에서의 시간은 다소 지루했다. 면세점부터 오락실, 식당, 편의점 등을 천천히 구경하였지만 그래도 도착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파리바게트에서 몇 가지 음식물을 사 식당칸으로 갔다. 식사를 하고 바깥 경치도 구경하고 아이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무료한 건 마찬가지였다. 식탁에 엎드린 채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자동차를 직접 가져가서 편하긴 한데 시간적인 면에서는 비행기에 비해 손해를 많이 보는 것 같네."
"그래도 비행기 타려고 대기하고 수하물 찾고 렌트카 업체 찾아가서 수속 밟고 하는 거 생각하면 시간 소비는 비슷할 거야." 한탄 섞인 내 말에 아내가 현명하게 대답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제주항에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차량을 가져온 사람들은 미리 차에 가서 앉아 있으라는 방송에 따라 우리는 차로 가  앉았다. 가서 보니 차량의 네 바퀴가 모두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 고박 작업이 세월호 참사 이후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 듯했다. 차가 출발하기 전에 그 잠금장치들을 모두 풀어헤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모자에 마스크를 한 구리빛 피부의 중년 남성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잠금장치를 하나하나 풀어냈다. 그는 손에 긴 쇠뭉둥이 하나를 든 채 허리를 굽혔다 펴며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찡그린 미간 사이로 굵은 땀방울 몇 가닥을 빠르게 흘려 보내며 내 옆을 지나갔다.

차가 실제로 배를 빠져나간 시각은 제주항 도착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은 뒤였다. 그래도 우리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목포항을 떠나며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 제주항
고박 작업이 되어 있는 차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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