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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 (3) - 변신의 공간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6. 12. 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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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 앞에 앉았다. 머리엔 올리브 가지를 두르고 왼손엔 올리브 가지를 든 채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그녀는 두려운 듯 상체를 뒤로 무르며 몸을 피할 장소를 찾으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읽고 있던 성서를 한 손으로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푸른색의 케이프로 급히 몸을 가리면서 두 눈으로는 그가 하려는 행동을 곁눈으로 감시하려 했다. 그때 그녀는 보았다. 그가 입을 열자 문자의 형태로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Ave·gratia·plena·Dominus·Tecum·(은총을 받은 자여, 기뻐하라.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이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 그녀에게 떠오른 것은 놀라움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의심이었다. 그녀는 자기 앞에 무릎 꿇은 사내를 보다 자세히 볼 요량으로 가는눈을 뜨고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생각했다.

 

*

 

그러니까 패널 가운데에 위치한 항아리나 양쪽으로 잘 분산된 구도 혹은 섬세한 묘사, 그런 것에 관심이 가는 게 아니었다. 금세공사가 만든 것 같은 화려한 조각도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녀는 온화하거나 경건하거나 미소짓는 것이 아닌 의심의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그것이 놀라웠다. 약간 기울어진 얼굴, 곁눈에 반쯤 뜬 눈, 내려앉은 입꼬리. 수태고지라는 그 성스러운 순간에 성모 마리아는 불신에 차 있는 듯했다. 차라리 놀람이나 공포, 두려움의 표정이었더라면. 광휘를 머리에 쓴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지천사 무리에 둘러싸인 성령의 비둘기와 함께 내려왔지만 성모는 즉시 알아보지 못했다. 주제 사라마구는 <예수복음>에서 마리아가 천사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것으로 묘사했으며, 루카는 마리아가 천사의 말에 몹시 놀라 그 뜻을 곰곰히 생각했다고 복음서에 썼다. 곰브리치는 해당 그림을 설명하면서 마리아의 모습이 다소 이상하게 그려져 있다고만 언급했다. 결국 성모 마리아가 보인 의심의 태도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는 문제였다.

 

*

 

그러니 노여워하지 말라. 천사마저도 자신의 진위를 이해시키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며 그 사이 의심의 눈길을 받아야만 하니, 너의 의도가 이해받는 데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동안 더 많은 의혹을 견뎌내야 하리라. 그 모든 것이 성모가 아닌 천사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으니, 너도 그를 알고 받아들이라. 이것이 우피치에서의 내 마지막 전언이니라. 

 

천사는 말을 마치고 떠나갔다. 서둘러 쫓으려 했으나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조금 더 걸어가자 옆방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푸른색의 케이프를 걸치고 있었다. 난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이 놀람으로 가득 차올랐다.

 

시모네 마르티니 & 리포 멤미, <수태고지>, 1333. 피린체, 우피치 미술관

 

 

푸른 케이프를 한 여인. 니오베 룸.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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