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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 (1) - 망설임의 공간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6. 12. 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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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이틀째,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향한 곳은 르네상스 미술의 보고인 우피치 미술관이었다. 예술에 취미가 있는 방문객이 피렌체까지 와서 우피치 미술관에 들르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보티첼리, 파브리아노, 다 빈치, 안젤리코, 조토, 카라바조, 마사초,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라파엘로...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예술가들의 목록은 우피치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당연하다는 듯 이끌었다. 

 

그러나 이런 대단한 규모의 중세 미술관은 기대 못지 않은 우려의 싹을 동시에 터 오르게 한다. 비슷한 것의 반복은 쉽게 피로를 일으키니, 좋은 소리도 세 번 하면 듣기 싫다는 옛말은 피렌체파의 놀라운 성과가 전시되어 있는 우피치 미술관에서도 오래된 지혜를 증명해내고 말았다. 복도를 따라 쉴 새 없이 늘어서 있는 회화와 조각은 비슷한 방식으로 내 눈에 피로를 일으켰다. 거대한 미술관엔 상징과 해석이 넘쳤고 나는 그것을 수동적으로 이해하기 바빴으니, 미술이 추구했던 아름다움이라는 본질은 과도한 내용의 파도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7번 방에 걸려 있던 파브리아노의 <동방 박사들의 경배>는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액자와 선 그리고 색채의 명료성으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사실 우리는 선명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사물들을 아름답다고 말한다"[각주:1]라고 했던 미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중세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광휘는 물론, 황금빛의 색채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채 오히려 그 앞에서 가벼운 피로의 증세만을 느끼고 있었다. 케이프를 두른 성모는 본래 무가치한 색으로 여겨졌던 푸른색으로 채색되어 있었음에도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거룩함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리하여 중세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동방 박사들의 경배>에 묘사된 박사들처럼 그림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신실한 신앙심을 드러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세인은 물론 기독교인도 아니었던 나는 그 영향력에서 그만큼 동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래서 나는 르네상스의 파브리아노가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였음에도 여전히 그 속에 교화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마치 삽화처럼 느껴졌던 <마니피카트의 성모> 역시 나를 머뭇거림에서 벗어나게 해주진 못하였다. 다른 거대한 작품들에 비하면 초라한 크기와 원형의 액자라는 다소 색다른 형식은 마치 유리구슬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듯한 묘한 감흥을 내게 일으켰고, 그래서 나를 반복의 피로에서 구원해 줄 수 있을 듯 하였다. 하지만 이 그림은 당시 사람들이 바라보았던 미의 의식, 즉 과학적 법칙을 따르는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이상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애써 들여다 볼 때에야 의미를 회복할 뿐이었다. 이것이 <비너스의 탄생>을 그렸던 위대한 보티첼리의 작품이 맞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을 거두기란 쉽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어렵사리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앞에 섰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어떤 감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멀리서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이 거대한 그림은ㅡ갑자기 걷힌 구름 뒤로 찬연히 모습을 드러냈던 푸른 하늘의 풍광처럼ㅡ흩어진 사람들 사이로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냈는데, 그것은 어떤 미학적 해석의 도움 없이 그 자체로 빛나는 광배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인체 본연의 미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에서 탄생하는 듯했고, 서둘러 비너스의 아름다움을 덮으려 하는 계절의 여신 호라는 윤리적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듯했다.

 

외적인 아름다움은 봄날의 꽃처럼 빨리 시든다고 했던 고대 로마의 보에티우스는 이 그림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가톨릭교도였기에 성경의 <아가서>에서 예찬하고 있는 여성의 외적 아름다움을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피렌체에서 전개했던 신플라톤주의 운동은 비너스를 성모 마리아와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게끔 하였으니, 만일 보에티우스가 이 작품을 보았다면 <비너스의 탄생>이 선명하게 보여주는 회화적 아름다움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현대 미술의 강령처럼 아름다움은 순수하게 그 자체로, 내적 도덕성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여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보티첼리의 캔버스화나 르네상스 화가들의 프레스코화가 아니라 보에티우스의 말이었다. "외적인 아름다움은 봄날의 꽃처럼......" 내가 감탄했던 회화적 아름다움은 이미 내 마음 속에서 시들어 사라진 상태였다. 보에티우스의 언명 역시 내 다짐에서 지워진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그래도 더 붙잡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이쪽이었다. "지혜보다 더 확실한 미는 없다. 추할 수도 있는 그의 (...) 외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내적 미를 찾아 (...) 당신의 마음을 움직여 어떤 남자를 미남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았다면 (...) 미를 찾아보아도 허사일 것이다."[각주:2] 플로티노스가 오래 전에 남긴 이 말은 사람의 내면은커녕 명작이라고 불리는 회화를 볼 때에도 충분히 관조하지 않았던 내가 지각할 수 있는 미는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걸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그들이 그려낸 신적인 광휘와 불꽃이 내 인간적 욕망을 불태울 불쏘시개가 되길 바랐을 테지만, 난 이들 회화가 나의 도덕은 물론 사람들의 윤리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이미 선언해 버린 뒤였다. 그렇기에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내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난 중세의 미술관을 거닐던 그때처럼 여전히 머뭇거리며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우르비노의 공작 부부> 옆에 서서. 이 애꾸눈의 '몬테펠트로 다 페데리코' 장군에게 관심을 갖는 관람자는 많지 않았다. 우피치 미술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 전시실에 선 아내. 우피치 미술관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동방 박사들의 경배>, 1423년. 페렌체, 우피치 미술관

 

 

산드로 보티첼리, <마니피카트의 성모>, 1482년경.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2년경.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1.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I, 39, 8. (움베르토 에코 <미의역사> (열린책들 2011), 88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2. 플로티노스 <엔네아데스> V, 8. (같은책 184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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