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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안쪽 - 낯설게 하기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6. 12. 1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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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저는 페리클레 피스케티라고 합니다. 당신은요?"

"저는 아닙니다."[각주:1] 캄파닐레[각주:2]

 

 

미켈란젤로는 조각의 우월성을 사방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서 찾았다. 조각은 모든 면을 완성해야 하니 평면적인 회화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따라서 그가 "태양이 달보다 더 우월하듯이 조각이 회화보다 더 우월하다[각주:3]"고 했던 조각, 그것도 중세의 가장 위대한 조각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피에타>를 직접 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미켈란젤로가 자신했던 그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 조각을 사방에서 관찰하기는커녕 가까이에서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괴한이 망치로 테러를 가한 이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거대한 방탄 유리로 막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방에서 완성을 해야 하기에 우월하다고 했던 조각의 입체적 미는 제대로 관찰될 수가 없었다. 성모의 몸을 가로지르는 띠에 큼지막하게 써 있다는 미켈란젤로의 서명은 물론, 성모의 표정마저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 조각상은 관찰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난 이 조각에 곧 흥미를 잃고 말았다. 

 

<피에타>뿐만 아니라 산 피에트로 대성당(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의 여러 유명한 작품들도 일반 방문객으로부터 멀찍이 격리되어 있었다. 베르니니의 <발다키노>도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었고 <성녀 베로니카>를 비롯한 돔을 받치는 네 개의 거대한 조각 역시 너무 멀리 있어 내 손바닥보다도 작게 보였다. 상시적으로 개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베드로의 청동좌상>마저도 미사 때문인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이 조각들을 보고서 감동을 느꼈던 수많은 관광객들과는 달리 난 별다른 놀라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물론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내부는 화려하고 높고 장엄했으며, 한쪽 벽에 걸려 있던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은 회화적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작가의 이름을 드높이며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혹은 신앙심과 조화를 이룬다는 느낌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가톨릭의 위대함과 성스러움을 드러낸 이 조각들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들을 간과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신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 노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달리 이 피에트로 대성당은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과 방화벽에 둘러싸인 채 다소 멀리, 다소 위압적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괴테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시절, 중세의 방치된 고성을 스케치하다가 정탐꾼으로 오해를 받게 된 일이 있다. 염탐하는 자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찾아온 그 지방 서기는 이 퇴락한 고성에는 정탐할 목적 이외의 어떤 특별한 점도 없다고 주장했다. 괴테는 서기의 말을 받아 "이 건물에서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나만큼 발견할 수 없는 것이 물론 그들의 잘못은 아니라고[각주:4]" 답변했다.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는 그 말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이 괴테라는 걸 끝까지 밝히지 않았고, 결국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오만하게 해석될 수도 있는 그의 행동이 그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힘입어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조각을 보고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내 잘못은 아니다,라고. 그러나 괴테의 시대와는 달리 모든 면에서 긍정적 요소를 발견하는 낙천적이고 순응적인 태도를 바람직한 시민상으로 제시하는 오늘날의 사회는 나의 그런 태도를 대성당의 조각을 즐겁게 감상한 사람들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 뒤 내 스스로의 교양이 부족한 걸 인정하라며 예의바르게 야단치려 들 것이다. 따라서 아무래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게 좋을 듯하다. "전 이곳의 모든 조각들이 그림 같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곳의 아름다운 조각들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주의: 실물은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을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피에타> 1449년. 로마, 산 피에트로 대성당

 

베르니니, <발다키노> 1633년. 로마, 산 피에트로 대상당

 

돔 부근의 천장 장식. 로마, 산 피에트로 대성당.

 

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변용>, 부분, 1520년. 로마, 산 피에트로 대성당

 

<발다키노> 옆에 서서

 

 

  1. 캄파닐레, <비극들tragedies>. (움베르토 에코 <거짓말의 전략> (열린책들 2003), 105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2. 아킬레 캄파닐레(1899~1977). 이탈리아의 작가. 비현실적인 방식의 재담으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3. 데이비드 파이퍼 지음, 손효주 역, <미술사의 이해 2> (시공사) 340쪽. (김현화 지음, <성서 미술을 만나다>, (한길사 2008) 52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홍성광 옮김 <이탈리아 기행 1> (펭귄클래식 2015) 4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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