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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다 (2)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6. 10. 16.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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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오해 말이다. 어떤 것에 대한 어려움이라는 것은 개인차가 무척 큰 개념이다.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하루에 한 번 청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니, 개인의 성향이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일관된 답변을 내놓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집에서 산후조리해도 문제가 없을까요?"라는 질문에 질문자가 원하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해줄 수는 없다. 이것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인터넷으로 자신의 운동 스케줄을 정해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대중적이고 평범하며 무성의한 답변은 달리기나 줄넘기가 되겠지만, 그것이 질문자가 원하는 답변은 아닐 것이다.


집에서 산후조리가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상당수의 답변이 '그냥 산후조리원에 가세요'인 이유는 ('달리기나 줄넘기를 하세요'라는 답변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일반적으로 좋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답변자는 질문자의 무릎에 어떤 이상이 있거나 폐에 질환이 있어서 그가 달리기나 줄넘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보통은 그런 가정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산후조리원에 대한 답변을 하려 할 때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가정은 "남편이나 친정 어머니가 집에서 오랜 기간 동안 정성껏, 물심양면 도와줄 수 있다"라는 낙천적 전망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걸 권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집에서 산후조리원 못지 않은 간호를 받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남편이나 친정어머니(어쩌면 시어머니)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긍정적인 가정을 하지 않는 건 매우 타당한 일이다. 일단 그들도 잠을 잘 시간이 필요한데, 그들의 수면 시간이 산모와 동일하다면 그들과 산모 역시 밤에 자주 깨게 됨으로써 체력과 정신이 쉽게 소모되고 말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을 마음을 바라보는 산모의 마음은 어느 정도 불편할 것이고, 그 불편한 마음조차 훗날 산후조리원에 가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의 싹이 될 수 있다.


그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 가정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생각보다 무척 길기 때문이다. 친어머니라면 좀 다행스러울 수 있다. 집안일과 육아에 어느 정도 익숙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안일을 많이 해보지 않은 남편이 잠깐 휴가를 내서 도와주는 거라면, 아마 높은 확률로 산모는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것이다. 산모와 아기가 쉬는 동안 남편이 해야될 일의 목록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마트에서 장보기

2. 요리하기

3. 설거지하기

4. 집안 쓸고 닦기

5. 쓰레기 분리수거 하기

6. 음식물 및 일반 쓰레기 버리기

7. 아이에게 분유 먹이기

8. 아이 트림 시켜주기

9. 아이 기저귀 갈아주기

10. 보채는 아이 달래기

11. 일반 빨래하기

12. 아이 옷 빨래하기(삶기)

13. 젖병 소독하기

14. 아이 목욕시키기

15. 산모 마사지 해주기

16. 산모 좌욕물 받아주기


위의 목록은 위 일들을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세부 항목들, 다시 말해 빨래 널기 및 걷기, 변기와 레인지 주변 등 세부 청소, 싱크대와 화장실의 수챗구멍 정리, 식자재 씻고 다듬기, 아이 건강 상태 확인, 산모 말동무 해주기 등등은 제외한 것들이다. 즉 남편과 친어머니가 일반 산후조리원 못지 않은 대접을 산모에게 해주려면 위의 목록을 기본으로 하여 개인 성향에 따라 완급을 조절해 나가야 한다. 만일 집안 식구들이 집안 정리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물건 정리에 드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산모와 아이를 위해 집안 청결에 신경 쓴다면 그들은 매일 청소를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산모의 건강을 위해 (맵고 짠 일반적인 밑반찬이 아니라) 좋은 식자재를 골라와 다양한 요리를 해줘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식사를 외부에서 주문함으로써 약간의 탈출구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집에서 돌보는 만큼 산모와 아이의 건강 문제를 미리 체크할 수 있을 전문 정보(귀동냥이 아니라) 또한 습득해 놓아야 할 것이고, 많이 공부할 여유가 없다면 긴급 상황에 대한 대처만이라도 알아 놓아야 한다.


결국 집에서 산후조리가 가능한가의 문제는 산모의 성향과 산모를 돌봐줄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다. 남편이나 친어머니가 성심성의껏 돌봐줄 수만 있다면 그들은 산모에게 일반 산후조리원에서는 따라올 수 없는 편안함과 정성을 제공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은 산후조리원처럼 정해진 식단이 아니라 산모가 그때마다 원하는 요리를 엄선한 유기농 재료로 만들어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체 모를 약품이 뿌려진 플라스틱 탁자에서 식사하는 게 아니라 깨끗한 1회용 키친타월로 닦은 집안 원목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확히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자신의 아이를 정해진 시간마다 가끔씩 보는 게 아니라, 남편의 정성스러운 손길 아래서 사랑받는 아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산모가 욕심을 조금 버린다면 적정한 수준에서 집에서도 산후조리를 받는 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에서 산후조리할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손익계산을 지혜롭게 해야 한다. 결국 위 목록에서 몇 가지는 제외하거나 산모가 직접 하게 될 수 있으며, 그렇진 않더라도 그 절차를 무척 간소화해야 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산모와 그 주변 사람들의 성향에 달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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