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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만의 검도, 미르치과기 검도대회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6. 9. 25.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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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검도인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검도 대회가 있다. 그래서 이 대회는 일반 검도 시합과 달리 남자들의 모습을 찾기가 더 어렵다. 여자 선수들만의 대회, 벌써 9회째를 맞이한 미르치과기 전국 여자검도 선수권대회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렸다. 아내와 함께 다소 늦게 도착한 체육관은 전국에서 모여든 여자 검도 선수들로 가득했고, 한영숙 관장님을 비롯한 관원 및 그 가족분들 역시 미리 와 자리에 앉아 계셨다. 주변에 있던 과천고 검도부 코치 박선영 사범님, 작년에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전 준우승을 한 허윤영 선수와도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사회인을 위한 시합이 따로 개최되는 여타 대회들과 달리, 미르치과기 검도대회는 1부 시합과 2부 시합이 같은 장소에서 함께 펼쳐진다. 덕분에 미르치과기에서는 1부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을 구경할 수도 있고, 다양한 경력을 가진 2부 선수들의 검도에 대한 열정과 즐거움을 전달받을 수도 있다. 이번 대회에도 예상대로 많은 선수들이 참가하여 2부 개인전의 경우엔 5회전을 통과해야 겨우 8강전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성시를 이루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운동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따라서 자신이 여자 1부 검도 실업선수를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인 남성들을 간혹 보게 된다. 아마도 그 사람은 아주 실력이 뛰어난 최상위권의 남자 사회인 선수이거나, 아니면 여자 1부 실업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착실히 운동하고 있는 현역 여자 실업 선수들의 칼과 몸의 빠르기는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하는 사회인 출신 선수들이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승부욕과 패기는 더욱 그렇다. 넘어진 선수에게 손목머리 연타를 하고 찌름을 가하는 여자 선수들의 시합을 보고 있노라면 사회인이 넘보기 어려운 승부의 세계를 느끼게 된다. 

 

한창 1부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있는데, 내 곁에서 같은 경기를 보고 있던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세 분의 대화가 들려왔다.

 

"와, 아깝다! 엄청나다, 정말"

"나도 저렇게 검도 할 거야!"

"남편들, 술먹고 늦게 들어오기만 해봐!"

 

여자 선수들이 빠른 칼, 힘이 넘치는 몸받음과 함께 기세를 드러내는 기합을 지를 때마다 아주머니들은 대화로 추임새를 쏟아냈다. 검도를 하시는 분들일까? 궁금해 하던 중 문득 한 분이 나를 붙잡고 물으셨다.

 

"그쪽은 누구 응원하는 중이야?"

 

난 아래에서 시합을 펼치고 있던 두 선수를 내려다 보았다. 두 선수 모두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며 응원하는 선수가 아니었고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양쪽 모두요."

"어머, 나도 그런데. 우린 누가 이겨도 다 좋아."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검도의 승부 자체를 즐기는 것. 아주머니들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은 채 이런 자리에서 검도를 통해 함께 하는 순간을 즐기고 계셨다. 아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고 하였으니, 검도는 몰라도 인생에 있어서 만큼은 이분들을 당해내기 어려울 듯했다.

 

대회 본부석의 모습. 플래카드의 서체가 유려하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1부 선수들

 

 

출전이 임박한 선수들의 대기석

 

한영숙 검도관 신수정 선수가 허리치기로 득점하는 모습

 

한영숙 검도관 김현지 선수의 머리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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