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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공예와 칼의 선택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6. 9. 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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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예술을 정의하는 고전적 의미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제 기술공예 또한 순수예술과 동등한 예술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물건의 본쓰임새가 아닌 장식에 힘쓰는 것, 다시 말해 사발의 옆면이나 분합의 자물쇠에 장식을 단 후 그들을 공예품이라고 칭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용적인 측면만 보자면 장식적 행위는 무의미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음식의 수준에 맞게 그릇 역시 아름다워야 격이 산다 할지라도, 여전히 장식의 수준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듯하다. 그릇의 아름다움과 음식의 맛은 별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여전히, 담긴 음식보다는 그것이 놓인 그릇이, 신발의 기능보다는 디자인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서적 제작이 쉽지 않았던 중세에는 내용이 중요한 문서일수록 특별히 더 세심한 장식을 양피지에 더했는데, 여기엔 형상은 그 내용에 걸맞은 가치를 겉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성경의 표지와 각각의 낱장들은 현대의 출판물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섬세하니, 그것은 성경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담을 그릇 또한 성스러운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왔다.


내가 조선세법을 연습할 칼을 고를 때 장식에 중요한 의미를 둔 것은 어느 정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먼저 알루미늄으로 된 가검과 사물을 벨 수 있는 진검을 선택사항에서 제외하고 나니, 실제로 무언가를 자를 수 없으나 가검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어중간한 것만이 목록에 남게 되었다. 이것은 음식을 담을 수는 있으나 실제로는 (감히) 담을 수 없는 사발과도 같았으니, 그런 사발은 예술성 때문이 아니라면 오직 오래된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사물이었다. 그러므로 가검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제로 무언가를 벨 수 있는 진검도 아닌 검을 수련용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순간, 어떤 특별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요소가 그 검에 포함되기를 바라는 게 된 것은 어찌보면 (내게는) 일정한 수순과도 같았다. 특수강으로 만들되 날을 세우지 않아 무언가를 벨 수 없는 검에 돈을 들인다는 것이 다소 탐탁지 않았으나, 난 우선 그것을 하나의 공예품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가검으로 만족했을 것이다(가검에 장식을 하면 어떤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원한다면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악기와 그저 겉모습을 흉내낸 악기는 존재의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공예품이란 그렇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지만 감히 마구 사용할 수 없게 하는 미적 기운을 풍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찾아간 곳은 도검의 장식기술로 따지자면 국내 1인자나 마찬가지라는 평을 듣고 있는 원도검이었다. 다른 업체들이 기존의 주물로 장식을 찍어내는 반면, 이 업체는 원하는 디자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도신을 만드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고 하니, 이런 업체가 국내에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난 이 업체의 제작자가 도신 제작과 연마를 넘어 한 사람의 공예가로 발전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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