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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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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교환이 종이를 통해 처음 이루어진 것은 고등학교 때 이웃의 여자 고등학교 학생들과 일기장의 교환하면서였다. 몇 무리의 여학생들이 자신의 하루나 생각을 적은 뒤 남학교로 보낸다. 그러면 그걸 전해받은 남학생들은 그걸 읽으며 히히덕거리고는 자신들의 별것 아닌 이야기들을 적은 뒤 다시 여학교에 건네주는 것이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몇 남학생들은 그런 교환을 통해 여자친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도 했다. 지금과는 달리 남의 일상적인 글을 읽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던 그 시절, 속 깊은 생각을 교환한 것은 아니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장난기 가득한 필체의 글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몇 번 그곳에 내 글을 적어 보냈다. 문득 그곳에 답장이 달려 왔을 때 느꼈던 감흥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내 서랍에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여성이 내게 쓴 편지가 있다. 어떤 일을 계기로 그런 편지를 받게 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편지 안에 담겨 있는, 나의 안부를 걱정하고 한편으론 격려하는 그 긴 글을 보면 나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그 사람도 나를 잊었을 것이다. 그의 필체가 담긴 편지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교환되지 못한 기억은 언제나 쓸쓸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건네준 기억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상상해본다. 도시의 기호들 사이를 잊혀진 채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그의 머리에 떠오를 나의 기억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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