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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가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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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과 무슨 말을 해도 될지를 모르는 것은 다르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지우고 다른 글을 써 보내야만 했을 때, 난 문체가 알고 싶어졌다.

 

여름밤이지만 벌레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은 그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 소쩍거리는 울음, 볼에 다가온 새벽의 이슬 기운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져 두려웠던 시기였다. 도마 위에선 사랑하는 이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픈 이의 손놀림이 서걱서걱 들려오던 시기였다. 가로로 세 번, 세로로 세 번, 곱게 썰린 양파가 도마 위로 쏟아지는 모습에 그녀의 마음이 투영된 것처럼 보이던 그때. 그녀는 아마 천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천사가 필요하지 않았고 그 사실이 내게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게 "당신이 천사가 아닐지라도"라고 말했고, 그제서야 그녀의 영역임이 결코 침범당하지 않을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청파동을 기억하느냐 물으면 나는 기억한다 답한다. 청파동뿐만 아니라 장난 섞인 구겨진 낙서종이마저도. 뜨개질하는 여인을 보며 난 그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가 망각을 선택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면 난 문체가 알고 싶어진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전달되지도 않을, 이 모국어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포함한 그 모든 문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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