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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루미 그리고 불빛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익숙한 길

by solutus 2013. 12. 3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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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가 제일 관심을 갖는 것은 레이저 포인터에서 나오는 빨간 불빛이다. 주변이 모두 어둠에 잠겨 레이져의 불빛이 더욱 강하게 빛나는 때면, 그 작은 불빛을 쫒는 루미의 몸짓은 더욱 민첩해진다. 불빛이 행여 시야에서 벗어날까, 사라져버릴까 노심초사하는 루미를 보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 불빛에 보여주는 관심의 반절조차, 루미는 나에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난 때로 루미를 부여잡고 그 털에 내 얼굴을 문지른다. 꼭 껴안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루미는 나의 그런 행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루미는 내게 가까이 오는 것 같으면서도,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으면서도 금세 돌변하여 내게서 도망친다. 도망치는 루미를 보는 건 슬픈 일이다. 난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동물과 나 사이의 벽이라며 위로한다. 하지만 이따금씩 그 벽이, 그 벽이 만드는 간격이, 꼭 동물과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곤 한다.

루미는 불빛을 쫒는다. 그런데 루미는 모른다. 아무리 쫒아다녀도 결코 그 불빛을 손에 쥘 수도, 입으로 물 수도 없다는 것을. 허공을 쫓고 있는 루미를 보면, 결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에 뜨거운 열망을 보내고 있는 루미를 보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나는 불빛을 조종하고, 루미는 그 불빛을 쫓고, 난 그런 루미를 바라본다. 결코 서로 온전히 가질 수 없는 것을 쫒는 우리들. 이런 '불빛과 루미와 나'의 고리를 또 다른 누군가, 또 다른 무언가에 그대로 대치시킬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건, 그리고 그 고리를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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