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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법 (2)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10. 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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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걸 알리가 없잖아"라는 말에 상처받은 A는 앞으로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B에게 요청할 것이다. 이에 B는 자신의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며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할 것이다. 이런 마무리는 '좋은 태도를 유지하는 대화법'이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상황을 기억하는 B가 다음번에 다음과 같이 물어본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줘. 난 네가 이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맞니?" B는 자신이 A의 요구대로 충분히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다가올 A의 불만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A의 불만은 단순히 B의 말하는 태도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라, B가 자꾸 자신이 모를 거라고 가정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대화는 B가 왜 그런 가정을 했는지("넌 10개 중에서 3개만 알았잖아. 그럼 대체적으로 모른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내 생각이 이상하게 느껴지니?"), 설사 그런 가정이 B의 관점에서 옳다고 하더라도 그걸 입밖으로 꺼내서 A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게 옳은 행위인지("꼭 그런 옛날 일 가지고 하나하나 평가해 가면서 굳이 내가 모른다고 얘기해야겠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존심을 상해하는 게 올바른 것인지("굳이 평가한 게 아니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든 것 뿐이야. 그래도 네가 3개는 안다고 인정해 줬잖아. 사실을 얘기한 것뿐이니 그냥 받아들여 주면 안 될까?"), 10개 중 3개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게 정말 사실인지("난 사실 5개를 알고 있어. 그걸 일일이 다 설명하기 싫어서 3개라고 한 거야. 꼭 그렇게 일일이 설명해야 해?")에 관한 것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 이후로도 여러 갈래로 계속해서, 어쩌면 반복적으로. 이런 식으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지속되는 갈등이 유지된다. 만일 그 이후의 대화가 "3개를 아는 것이나 5개를 아는 것이나 모르는 건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모른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니 네가 항상 현실에 대해 푸념만 할 뿐 변하질 못하는 것이다"라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면 더 이상 좋은 분위기가 지속되리라는 보장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히 좋은 태도가 아니다. 상대방이 나를 항상 좋은 사람이라 여겨주길 바라며, 동시에 자신이 지적하는 사항에 대해선 수용하고 고쳐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상반된 마음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적용하려 한다. 자신의 행동은 (결과가 좋든 안 좋든 간에) 의도로 판단하고, 상대방의 행동은 (의도가 좋은 안 좋은 간에) 결과로 판단하려 하듯이.

 

나도 태도가 모든 걸 바꾼다고 말하고 싶다. 나도 어찌 낭만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나도 어찌 작은 변화의 시도만으로 미래가 달라질 거라는 달콤한 말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말하는 태도의 변화는 시작일 뿐이다. 그 이후의 난관들을 모른 채 한다면, 그건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동화책과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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