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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취미, 어쩌면 나쁜 취미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10. 15.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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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감기 때문에 꽤 고생을 했다. 올해 들어, 아니 지난 몇 년을 떠올려 봐도 감기 때문에 이렇게 고생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아직도 다 낫지는 않았다). 덕분에 내가 가진 취미들의 한 가지 단점을, 더 나아가 안 좋은 취미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파서 누워 있으니 내가 무언가를 돌봐 줄 수가 없었다. 내가 돌봐줄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이 해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건 말을 몇 번 하면 바로 알아듣고 해줄 수 있는 수준이어야 했다. 예를 들어 몇 주기로 한 번 식물에 물을 준다던지, 고양이의 먹이를 갈고 화장실을 치워준다던지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바닷물고기와 산호를 기르는 취미는 달랐다. 먹이를 주거나 물을 보충해주는 일을 빼면 가장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물갈이, 즉 수조의 물을 갈아주는 일조차도 누군가에게 맡기기가 어려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해야하는 물갈이는 통상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비어 있는 20리터 물통에 일정량의 물을 받고, 정해진 양의 해수염을 퍼서 그 물통에 넣고, 물통 속에서 수류모터를 하루 이상 돌려 해수염을 녹이고, 물통 속의 수온을 수조 속 수온에 맞추고, 수조 속의 리턴 모터와 수류 모터를 끄고, 리턴 모터를 끄자마자 수조 속의 물을 일정량 비우고... 이 정도가 전체 과정의 반 정도를 진행한 셈이다. 주변 정리까지 마치려면 좀 더 멀리 가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이것뿐이라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오랜만에 돌아와 섬프칸을 보니 스키머의 컬렉션 컵(일명 똥통)이 넘쳐서 거품이 스키머 뚜껑을 뚫고 올라와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조금 더 놔두면 컵 안에 모인 오물이 수조로 넘쳐 들어갈 지경이었다. 하릴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컬렉션 컵의 오물을 버리고 씻은 뒤 제자리에 끼워 넣었다. 섬프칸 사방으로 튄 오물을 닦아내는 건 그 다음 일이었다. 오물이 튀어오른 게 길어야 3일일 터인데, 섬프칸의 문을 화장지로 닦자 그 아래쪽으로 소금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그보다는 화장지에 묻은 오물이 더 고역이었지만. 이것뿐이 아니었다. 양말필터가 점점 막혀가면서 물이 양말필터 위로 역류하여 거꾸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고, 그 소리가 방 안까지 들려왔다. 여분의 양말필터가 없었기 때문에 양말필터를 위쪽으로 끌어올려 임시방편으로 처리했다. 마음 같아서는 락스에 담가놓은 양말필터를 빨고 싶었으나 몸이 여의치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만일 내가 오랫동안 아프게 되면 이 수조 속에 갖힌 생물들, 특히 물고기들은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는 셈이었다. 그나마 한 가지 방편이 있다면 모든 생물을 다른 해수 취미를 하는 집으로 넘겨주는 것인데, 각 수조에서 기를 수 있는 물고기 수엔 한계가 있는 법이니 그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 내 주변엔 나 말고 해수 취미를 하는 사람도 없으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른 취미들은 내가 아프든 아프지 않든 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생명과 관련된 것들은 온전히 내 책임 하에 놓여 있었다. 나의 아픔이 곧 그들의 아픔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로지 즐기기 위해서 한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취미를, 나에게 그리고 어쩌면 (나 하기에 따라서) 그들에게도 결코 좋을 수만은 없는 취미를 나는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이게 꼭 취미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내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가족이든... 그들은 내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떠넘길 수 있는 무생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나쁜 취미였다고, 나쁜 선택이었다고 때때로 후회를 하게 될지언정, 아픈 몸을 이끌고서라도 지금 당장은 그들을 위해 달려 가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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