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군인인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임하면서 민주주의에 관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민주주의 정신을 고양하는 명연설로 자리매김한 채 아직까지 기억되고 있다.
"우리의 정치체제는 이웃나라의 관행과 전혀 다릅니다. 남의 것을 본뜬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남들이 우리의 체제를 본뜹니다. 몇몇 사람이 통치의 책임을 맡는 게 아니라 모두 골고루 나누어 맡으므로, 이를 데모크라티아(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개인끼리 다툼이 있으면 모두에게 평등한 법으로 해결하며, 출신을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에 따라 공직자를 선출합니다."1)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지만 그 연설은 온전히 민주주의의 훌륭함을 주장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았다. 자신들과 같은 이런 훌륭한 민주주의를 정치체제로 가지고 있지 못한 다른 나라들, 예를 들어 스파르타나 멜로스 같은 기타 이민족에 대한 우월함을 나타낸 뒤 그런 이유로 아테네가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것을 영리한 방식의 <남용의 수사학>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정치 체제를 구현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우리의 힘을 행사할 권한을 가진다>2)는 것이다. 실제로 아테네는 멜로스 섬을 그와 같은 이유로 공격하고 정복했으며 (투키디데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후 멜로스의 모든 남성들을 처형하고 아녀자들은 노예로 만들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훌륭한 것은 분명하나, 아테네인들은 이를 남용하여 교묘히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는 데 사용했다.
이런 것은 다른 이념이나 사상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간의 '이성'이 훌륭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취지의 주장을 한 후,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된 이성'을 가지지 못한 여성이나 흑인들은 제대로된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이것 역시 남용의 수사학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교묘한 설득은 아직도 계속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든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물론 네오콘, 이슬람 급진주의, 각 나라의 정치가들이 여전히 아주 잘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남용의 수사학이 숨기고자 했던 본질적 주장을 과격하지만, 그래서 솔직하게 느껴지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잔챙이들아, 좋든 싫든 받아들여!>3) 악당들이나 외칠 법한 이 명령을 설득력 있게 바꾸기 위한 것, 가면의 정치, 그것이 바로 남용의 수사학이다.
1) 네이버 캐스트 중 인물 세계사 "페리클레스"
2) <가재걸음>,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열린책들 2012), 83~84쪽
3) 같은 책,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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