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멀리서 찾아온 늦은 밤의 무리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10. 6. 17:58

본문

평소답지 않게 내가 호들갑을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절세"라는 이름이 붙은 "절세 몬티" 산호를 구하고자 밤 늦게 아내와 함께 목동의 어느 집을 방문하고 난 뒤 그녀가 내게 한 말이었다.

 

운동을 마친 후 산호를 판매 중인 그 집에 찾아간 시각이 밤 10시였다. 현관문이 열리며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나를 반겨주었다. 현관 바로 옆에는 가로 길이가 750mm 정도로 느껴지는 수조가 있었고, 그 수조의 바로 옆방에는 그의 아내가 등을 돌린 채 앉아 아이랑 놀아주고 있었다. 즉 내가 어떤 말을 하면 그 말이 잘 들릴 만한 거리에 그의 아내가 앉아 있었다. 내가 호들갑을 떨었던 건 그 탓이 컸다. 내가 하는 말이 아내분에게 잘 들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의 취미를 인정해주지 않는 걸 종종 보고 들어왔다. 그런 돈도 안 되는 취미는 해서 뭐하는가, 그런 거 할 시간에 집안일을 좀 더 해라, 혹은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애지중지하느냐 하는 식의 말들. 내가 그 집에 처음 들어가서 뒤돌아 앉아 있는 그의 아내를 보았을 때---물론 늦은 시각에 방문한 불청객을 화장이 지워진 얼굴과 추레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기껍게 맞이해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어쩌면 이 취미가 온전히 이 남편 혼자만의 것일지도 모르며, 더 나아가 아내에게 좋은 취미로 인정받고 있지도 못한 상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수조의 오른쪽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수조 가운데를 반바퀴 돌아 솟아오른 멋진 성형락을 보았을 때, 어쩌면 이 성형락이 남편분의 오랜 고민 끝에 만들어진 노력의 보상품이라는 사실을 그의 부인인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우와, 산호 배치가 정말 대단하네요, 이 산호는 색감이 정말 멋지네요, 저 뒤에 떠있는 것 같은 라이브락은 뭐죠? 공중부양락인가요? 수조가 굉장히 조용하네요, 이렇게 조용하게 유지하기 정말 어려운데, 그리고 이건......

 

얼마 전, 베네치아를 돌아다니다가 모형 선박을 잔뜩 전시해 놓은 가게를 본 적이 있다. 대형 범선, 갤리선 등이 온갖 곳에 놓여 있었다. 난 주인이 그 물건들을 수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몰랐다. 실제로 직접 제작을 한 것인지, 그런 걸 수집하거나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잘 몰랐다. 잘 몰랐기 때문에 내가 그 모형배를 보며 놀랄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그저 돈 주고 사면 되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애들 장난감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별 대단할 것도 없는 물건들이었지만, 직접 재료를 사다 만들고 에나멜로 채색까지 한 것이라면 그건 그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잘 몰랐기에 제대로 감탄할 수가 없었다.

 

그랬었기에 이번에 난 그 남성과 그의 아내분에게 간접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나 역시 짠물생활을 하는 동호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그동안 공들였을 시간, 배움의 수준, 관리의 정성을 알아보았음을 말이다. 혹여 그의 아내분이 그 수조와 그 안에 있는 산호의 색을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모르고 있다면 이 낯선 이방인의 말을 통해서라도 알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감탄하고 가?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내가 돌아간 뒤 아내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면 나의 의도는 온전히 성공한 셈이다.

 

<논어>의 학이편엔 "유붕자원방래"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단순한 벗이 아니라 뜻을 함께하는 무리, 즉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먼 곳에서 찾아오는 즐거움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남들이 자기를 몰라주더라도 원망하지 않는 것이 군자"라는 말이 따라온다. 그 집을 방문하고 나오는 길에 논어의 그 말을 떠올렸다. 그것이 꼭 배움과 수양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