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요, 당신은 도둑이요, 내 말을 믿어요>라는 말을 들은 사람의 다음과 같은 응답을 환기시킨다. <아니, 《내 말을 믿어요》라니, 그게 무슨 의도요? 내가 의심 많은 사람이란 걸 넌지시 비치는 거요?>" 1
이 일화는 움베르토 에코가 자신의 책 <작가와 텍스트 사이>에서 인용한 것이다. 위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서 어떤 약호를 찾아내려는 경향이 있다. 에코는 누군가가 상대방의 모든 언급에서 이런 해석을 찾아내려고 시도한다면 그 사람은 편집증 환자일 거라는 판단을 은근히 내비친다. 꼭 '모든'이란 말에 힘주어 읽을 필요는 없다. 일부의 사례에서 국한하더라도, 만일 그가 사실의 명백한 관계에 집중하기보다는 정확히 밝힐 수 없는 신비로움과 비밀에 연연한다면 그는 어떤 강박관념에 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얼굴과 몸매, 재능, 매너, 성격, 재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이 완벽해 보이는 한 미혼 남자를 향해, 아마도 저 남자는 성적으로 문제가 있을 거라는 가정을 집요하게 한다면 그건 망상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사례가 특이한 환자에 해당하는 흔치 않은 경우라 생각한다. 아니면 적어도 자기 자신만큼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로 그 생각(자신은 그렇지 않다는)의 근거에 신비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망상증 환자와 우리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 의해 편집증 환자로 분류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상황 판단 능력, 추론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편가르기의 문제이다. 물론 이성의 비판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상태에서 보면 방금의 명제는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힌 인간사의 관계는 오성의 활발한 활동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가령 철학 훈련을 받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남자에게서 단점 하나를 찾아낸 뒤, 그것이 왜 그 남자의 단점인지를 이성적으로 판별해낼 수 있다. 이것은 적절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남자에게서 단점을 딱 하나만 찾을지, 다섯 개를 찾아낼지, 아니면 열 개를 찾아낼지의 문제는 이성의 작용을 거의 매번 벗어난다.
<이봐요, 내 말을 믿어요.> 어떤 이가 똑같은 억양과 말투와 표정과 몸집으로 여러 사람에게 말한다. 같은 편에 속한 사람들(친애하는 가족, 사랑하는 애인 등)은 <네, 전 당신을 믿어요>라고 할 것이고, 다른 편에 속한 사람들(재산분할 다툼을 하는 가족, 외도를 의심하는 애인 등)은 <그렇게 꾸며 말하면 믿을 거 같아?>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석은 온전히 상대방에게만 달린 게 아니라 바로 내 상태, 내가 속한 권력, 내 기분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 자신만큼은 A라는 자극에 B, C라는 자극엔 D로, 일관되게 반응할 거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반응은 우리의 감정과 마찬가지로 일관성이 없다. 이렇듯 신비로움과 해결할 수 없는 비밀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상 일종의 편집증 환자인 셈이다. 이 환자들의 지긋지긋한 패러다임 속에서 싸우고 토론하고 그러다 지치고 낙담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적 운명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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