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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을 간직한 성숙한 인간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9. 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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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는 것은 이른바 성숙한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성숙함은 의젓함과 뗄 수 없었다. 의젓해진다는 것은 분명 유아기의 대부분과 청소년기의 일부분을 채우는 어떤 특성과 결별하는 것을 뜻했다. 그것은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적 행위를 포함했는데, 그중 하나는 귀여움을 떠는 행동이었다. 애교를 부리거나 귀여움을 떠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적 행동이었고, 그것은 인간이 어른이 되어 갈수록 보기 힘든 행위가 되었다. 남성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 또한 어른이 되어 갈수록 자신이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그 행위들을 잊어버려야 했다. 교양있는 정숙한 여인과 귀여운 행동은 분명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경향은 전통적 소설에서 매우 두드러진다. 인간적 지평을 탐구하는 여인들은 말 그대로 어른스럽다. 진지하고 차분하고 정갈하다. 그에 반하는 여인들은 자신들의 미성숙함을 드러내기 위해 다음과 같은 행동을 선택한다. 즉 크게 웃고, 옷으로 몸을 제대로 가리지 않으며, 이성에게 애교를 부리고 때로는 공공연하게 성적 매력을 노출한다.

 

성숙한 인간에 대한 이런 구분이 단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걸 오늘에 이르러서야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동안 여자 연예인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취하던 그 귀여운 행동들을 매체가 아닌 눈앞에서 실제로 보았을 때였다. 그녀는 사실상 초면이나 마찬가진 내 앞에서도 서스럼없이 귀여운 행동들을 했다. 난 그 행위에 상당히 놀랐으며, 내가 놀란 이유를 생각하다가 더욱 놀라게 되었다. 나는 어른이 그런 귀여운 행동을 다른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놀란 이유는 명백히 (성숙해야 할) 어른이 (어린아이나 할 법한) 그런 행동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난 그녀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할 만한 이유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즉 어른스러움은 귀여움과는 별개의 것이었는데도 난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구분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타인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특정 행동을 이유 삼아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것일 터였다.

 

같은 곡을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했을 때와 전자기타로 연주했을 때, 어느 편이 더 경건하게 들리는가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이 답은 '어느 쪽이 더 경건하게 느껴지는지'를 정할 뿐이여서,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한쪽은 천박하다'라는 답을 이끌어 낼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유사한 상황에서 아주 쉽게, 다른 한쪽은 잘못된 것이라는 강렬한 유혹에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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