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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머리에 머리핀을 단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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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밥을 먹은 뒤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 앞에 섰다. 그때 나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작은 은색 컵을 꺼내 정수기의 물을 담던 순간, 내 앞에 있던 은색의 자외선 컵 살균기는 자신의 몸에 내 뒤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투영하였고, 때마침 그 중 한 사람이 지니고 있던 무언가가 내 눈에 띄였던 것이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는 누군가의 옆머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저게 뭐지?' 난 고개를 뒤로 돌려 그걸 보았다. 그건 머리핀이었다. 한 아가씨가 자신의 옆머리에 핀을 꽂은 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큰 나비 모양의 머리핀. '아 머리핀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아, 머리핀을 꽂고 다니는 사람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이네. 그것도 옆머리에다가.'

그 아가씨는 내 옆 방에서 근무하는 아가씨였다. 오다 가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ㅡ옆머리에 머리핀을 하나 하니까 아주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길(대개는 험담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딱 좋은, 그런 색다른 느낌 말이다. 난 여성성이라는 것을 매우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럴 때만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옆머리에 머리핀을 한 여성을 본 다른 어떤 여성은 '예쁜 척 하기는'과 같은 조소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꽂은 위치가 옆머리라면 더욱 말이다.

나는 여성들의 세계를 잘 모른다. 다만 이런 얘기를, 거리에서 단순히 길을 걷는 것 같아도 여성들 사이에는 서로에게 대한 묘한 신경전이 오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옷매무새나  키, 입고 있는 옷, 옆에 끼고 있는 남자 친구, 기타 등등에 대한 은밀한 비교와 평가가 얼굴 표정, 목소리의 톤과 빠르기, 억양의 자신감으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상대 여성이 그런 우월감에 빠진 걸 눈치 챈 다른 여성은 이내 기분이 나빠지고 만다. 그래서일까. 아주 가끔씩, 그런 걸 가지고 상대방을 흘기는 여성들을 본 적이 있다. 평소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다가, 그런 것엔 전혀 신경쓸 것 같지 않아 보이던 한 여성이 흘러가는 말처럼 한마디 툭 하는 것이다. "자기가 예쁜 줄 아나 보죠."

그런 특성이 여성만의 특징인지, 그런 특성을 보이는 아주 소수 여성 부풀리기인지, 여성의 그런 사실만 기억하는 나의 착각인지, 여성 비하를 일삼는 남성들의 헐뜯기인지, 자기 잘못은 못 보는 남성들의 착각인지, 혹은 기타 다른 요인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난 그런 걸 신경쓰지 않으니까. 머리핀을 꽂은 그 아가씨를 보고 난 뒤 든 생각은 그 머리핀이 그 아가씨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는 것이다. 그럼 그것으로 된 거다(설사 어울리지 않았다 해도 어떤가. 결국 그건 놀랍도록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니). 행여 옆머리에 머리핀을 꽂은 그 아가씨를 보고 공주병이네, 왕내숭이네 하는 이상한 평가가 오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상엔 그런 단순한 도구 하나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니까(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 모든 두려움을 뒤로하고 자신의 취향을 드러낸 그 아가씨에게 격려의 박수를.

글을 쓰고 시계를 보니 8시 24분. 이 시간에 집에 있는 건 이곳에 온 뒤로 처음이다. 약을 먹었으니 내일은 좀 몸 상태가 나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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