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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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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비였고 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발단이 무언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정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 분은 언론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한 분은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언젠가는 해야 되는 거야." "언젠가는 해야 되겠죠.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해요." "아니, 왜 못해." "그게 어디 쉽나요. 하려다가 계속 못 하고 있잖아요." "그게 정부가 힘이 없어서야. 안되는 게 어딨어. 해야 되는 일이면 해야 하는 거지." "하긴 해야겠죠. 하지만 적어도 제 시대엔 안했으면 좋겠어요. 하면 좋긴 하겠지만 그럼 경제 불황은 어느 정도 당연한 거고, 그럼 그 시대 사람들만 힘들어지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볼 순 없잖아."


그런 얘기가 10분 이상 계속 되었고 20대와 40대의 언성은 조금씩 높아져갔다. 그들은 결국 '서로 경향이 다르니 그만 얘기하자'라며 정치 얘기를 끝냈다. 그들의 대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는 동안 차 또한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그를 뒷 좌석의 누나가 알아차렸지만 차마 그들의 대화를 깨지 못해 잠자코 앉아 있는 걸 택했다. 차는 큰 길로 빙 우회했다.


나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학생들은 눈을 가린 채 서로의 가슴을 연필로 찌르고 있었고, 어른들은 돈에 대한 선망과 시기가 구조의 문제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러다 곧, 모두들 지쳐버렸다.


밖은 여전히 비였다. 수증기가 슨 유리창으로 건물들이 흐릿하게 지나갔다. 회색빛 하늘, 회색빛 도로, 회색빛 차들, 회색빛 건물들, 회색빛 사람들. 도로는 정체였고 세계는 온통 무채색이었다. 반복의 차이가 아닌 차이의 반복이 어둠처럼 내 눈을 비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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