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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금요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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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내내 출장 회의였다. 덕분에 봄 같지 않는 칼바람 속에서 이동하는 내내 추위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역시 돌아다니는 것은 좋았다. 언제나처럼. 열흘 전쯤에, 사무실 사람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강 둔치로 놀러 간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는데 날씨 탓에 아직 한번도 가지 못했다. 가려고만 하면 황사에, 비에,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까지. 아, 빨리 봄 소풍을 갈 수 있었으면.

2. 길을 가다가 거리에 떨어진 휴지 조각을 보았다. 그러자 문득, 아주 오래 전의 한 여자애가 떠올랐다. 난 그 아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성으로의 감정이 있었다고나 할까. 발랄했고, 무엇보다도 착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어느 날, 그 애와 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었다. 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조심스럽게 계속 그 애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그날도 사람들과 웃으며 즐겁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 아인 아이스크림의 겉봉지를 뜯은 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걸 땅에다 버렸다. 난 땅에 떨어진 그 겉봉지를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멀찍이 가버린 후까지도. "야, 빨리 안오고 뭐해?" "응, 알았어." 난 그렇게 대답하곤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얼른 그 겉봉지를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난 일순간 쓰레기로 전락한 그 겉봉지를 손에 쥐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그 아이에게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땐 그게 그토록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예이츠 씨의 시가 생각난다. "그녀는 나무에서 나뭇잎 자라듯 쉽게 사랑하라 했지만 (…) 그때 난 젊고 어리석어 지금은 눈물만 가득하네."

3. 퇴근하는 길엔 언제나, 입구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전경 버스를 지나치게 된다. 항상 같은 장소에 서 있는 전경버스. 언제 갑자기 나타나 돌입을 시도할지도 모르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단다. 그래서 그들은 밥도 버스 안에서 먹는다. 오늘은 퇴근하면서 그들이 버스 안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걸 보았다. 세상은 불공평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아주 아주, 아주 오랜만에.

4. 집에 돌아오니 친구가 묻는다. "너 요즘  무슨 음악 들어? 라디오 헤드 들어?" "나 요즘 음악 안 듣는 거 알잖아. 들어도 클래식 들어." "내가 널 위해 명곡을 준비했다." 친구는 일본 듀오 밴드, Dream come true의 곡을 시작으로 야니의 아크로폴리스 공연 실황, 라디오 헤드의 어쿠스틱 라이브 , 노라 존스의 라이브, RATM의 우드스탁 공연, 빌 에반스의 재즈 연주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음악을 멀리 한지 몇 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밝고 경쾌한 곡은 여전히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금요일 밤이 즐거워졌다. 정말 참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다. 우리가 계속 음악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주 잠시였지만 상상은 즐거웠다.

5. 주말이다. 이제 주말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난다. 주말의 재발견. 에쿠니 가오리 씨가 그랬던 것처럼, 난 이제 금요일 밤과 그 다음의 주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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