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문 저녁, 서울역에서 명동까지 함께 걷는다. 걸으며 많은 것을 본다. 그것을 글로 적고 사진으로 남긴다. 기록한다. 기록은 단순히 시간과 장소를 남기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을 의미있게 만들어주고 앞으로의 시간을 기대하게 만든다. 항상 똑같은 장소에서 본 똑같은 건물들, 나무들, 배경들. 그러나 기록의 순간 다시금 그것들을 떠올려보게 되고---그때의 공기가, 신호등의 깜빡임이, 차의 경적 소리가, 파리하게 떨리던 오랜지빛 가로등이, 아내의 발걸음과 표정이---이전과 다른 무엇이었음을 알게 된다. 손을 뻗어 주먹을 쥐어보아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던 그 저녁 공기 안에, 실은 손을 펴면 조용하게 흩날릴 어떤 감각이 있었음을 느낀다. 다시 한 번 손을 뻗어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가 천천히 펴본다. 열린 손바닥을 바라본다.
그는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나선다. 그에겐 정해진 직업이 없다. 비정기적으로 바뀌는 아르바이트만이 있을 뿐. 회사에서 야근을 끝마친 뒤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직장인들이 그를 바라본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힘들고 또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아니지만 일단 안정적이잖아. 아르바이트하는 인생보다야 낫지. 그들은 미래를 바라보며 웃음짓는다. 때마침 그도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웃음짓는다. 우리 아이캔 씨, 새로운 아르바이트 구했다면서? 축하해. 아내의 메시지다. 새로운 일도 힘내서 화이팅!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 전송되어온다. 그는 답신을 한다: 물론이지. 예스, 아이 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건물 아래 몸을 웅크린 고양이 한 마리. 머리 위쪽을 무끄러미 바라보더니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힘차게 뛰어오른다. 뛰어오르고 또 뛰어오르는 고양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뛰어오를 그 고양이.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곤 마치 그 고양이를 흉내라도 내려는 듯, 허공을 향해 살짝 뛰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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