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에 대한 책은 꽤 많다. 일례로 서양 역사를 다룬 책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고대와 중세의 작가와 그 작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사 위주이기 때문에 작가, 특히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반 쪽이나 한 줄이나 심지어 한 단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많은 학생들이 로마 시대의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스를 썼다고 외우지만 아이네이스가 무슨 내용인지 아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문학을 중심으로 다루는 책은 어떨까? 대중서적을 보았을 때 그들 대부분이 줄거리 요약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고전 및 중세 문학을 다루는 책 중 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책은 "세계문학의 천재들"(해럴드 블룸 지음, 손태수 옮김)인데, 책의 제목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듯이 작품 위주의 책은 아니다. 또 작가에 대한 이야기와 그 작가와 관련 있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 역사적 배경이야기, 그리고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뒤섞여 나오기에 읽기에 쉬운 책이 아닌, 그러니까 다소 식자층을 위한 책이다.
그에 비해 이 책은 그 책 내용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읽기 어려운 것처럼만 느껴지는 고전과 중세 문학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독서법에 대해 쭉 설명한 후 이렇게 쓴다. "이 사내가 무엇 때문에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가로 꼽히는지 늘 궁금해 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역사상 가장 재능 있는 작가와 보조를 맞추어 탱고를 출 것인가, 바로 그 차이다." (155쪽)
그리고 무엇보다도---이 책은 재미있다. 이 책의 작가 잭 머니건은 고전이 재미있게 읽히기를 희망했고, 어느 정도 그 일을 해냈다. 줄거리를 요약하고, 배경을 설명하고, 이 글을 쓴 작가의 인생을 나열한 책들(물론 그런 책들도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이 가지지 못한 관점과 재미가 이 책에 담겨있다.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정 학생들에게 초서의 작품처럼 생소하고 만만치 않은 작품을 읽히고 싶다면, 우선은 학생들이 좋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세 시대 작품이 재미도 있으면서 살짝 도발적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있을까?"(125쪽) 그리고 작가의 그러한 생각은 이 책 전체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 배경이나 문학사상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책은 그런 재미를 위해 자신의 글쓰기에 현대적인 감각을 부여했다: "십중팔구 호메로스는 그런 기분이었을 거다. 일종의 이년차 증후군에 걸렸을 거라는 얘기다"(22쪽), "오디세우스의 집을 무슨 남학생 사교클럽처럼 만들어버리던"(23쪽), "마법의 주문을 걸어 사람을 동물로 만든다(그래, 사람이 동물로 변하는 건 술 때문만은 아니다)."(26쪽) 이런 표현들은 확실히 고전에 대한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작가 특유의 그런 장난스러움이 날카롭다는 느낌보다는 놀리거나 비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어 읽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은 면도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베르길리우스가 "너희가 정복한 자들을 평화로써 가르치고"라고 한 부분을 독선이라고 일침을 가하는 부분에선 그의 비판적인 시각이 잘 나타난다. 또한 작가 자신의 멋진 표현들도 눈에 띈다: "전설의 섬과 사실의 섬들 주변에서 농락당하다가"(23쪽), "책을 읽는 동안 여러분의 대뇌 속 은막에 필름이 영사되도록 하는게 중요하다"(24쪽).
난 오래 전부터 성서 그 자체에 꽤 관심이 있었는데(서양 문학의 상당수가 크건 작건 구약과 신약의 영향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 완독하지 못했다. 사실 앞으로도 빠른 시일 내에 완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을 부분을 추천을 해주는---자세하진 않지만---이 책은 도움이 된다(후에 이스라엘로 불릴 야곱, 사무엘상의 다윗, 열왕기상의 솔로몬, 엘리야와 그리스도의 유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전도서, 고린도전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요한계시록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성경의 이 부분은 분명 읽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책에 관한 책'은 결국 그 책에 대한 소개서에 불과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책에 관한 책'이 그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결국 그 책을 손으로 잡게 만든다면---게다가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알려준다면---그 또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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