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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본심. 클리포드 나스 외 지음. 방영호 옮김 (푸른숲 2011)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2. 3. 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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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다른 심리학 책과의 차이점이라면 과학적으로 보이는 실험 결과를, 그것도 컴퓨터를 이용해서 내놓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심리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런 실험을 시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시도는 다소 성공적이어서 그들이 한 심리 실험을 꽤 정당성있게 또 설득력 있도록 보이게 했다. 하지만 몇몇 주장에서는 결론 도출에 다소 문제점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서평에서 한쪽은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다른 한쪽은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했을 때 사람들은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한 서평자를 더 지적이고 유능하다고 생각했다는 한 실험을 보자. 이 실험까지는 좋은데, 그 실험을 통해 저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더 지적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려버린다. 이 결론의 문제점은, 단순히 '부정'과 '긍정'의 차이가 더 지적으로 보이고 안 보이고의 차이를 결정지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나는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영화평론이나 책서평, 물품의 사용후기를 읽을 때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글들을 더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그 글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한 '출판사 서평'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주고, 또 단점을 스스로 드러내는 출판사나 제조사가 없다는 점에서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좋은 말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균형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즉, 단순히 "부정적 의견 = 지적으로 보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는데 그 부정적 의견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라거나, 긍정적인 내용인데 작품을 자세히 분석하여 그 작품이 지닌 매력을 잘 이끌어냈다고 생각해보자. 누가 그런 의견에 단순히 지적이거나 지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 (아주 흔한 예시이긴 하지만) 외향성/내향성 테스트가 있다. 이 책은 이런 글을 인용한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대개 두 발을 넓게 벌리고, 몸을 꼿꼿이 세우고, 동작은 크고, 얼굴 표정의 변화가 많으며, 대화 상대와 시선을 자주 마주친다. 반면에 내향적인 사람들은 대개 몸이 구부정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어깨를 움츠리며, 대화 상대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109쪽) 이 글의 문제점은 외향적인 사람들과 내향적인 사람들의 차이점을 잘못 묘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은 그렇게 외향과 내향으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에 있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내 기분에 따라, 내가 누구를 상대하고 있느냐에 따라, 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따라 외향적이고 내향적일 때가 변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아무래도 난 외향적으로 변하고, 처음보는 사람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다소 내향적으로 변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외향적으로 변하고 잘 모르거나 하기 싫은 일일 때는 내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단순히 외향적인 사람들은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끌리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끌린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태도는 분명---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대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향성과 내향성에 대한 그의 의견을 수용한다 할지라도 같은 성향의 사람들끼리 끌린다는 그의 주장은 수용하기 어려운데, 사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성격을 지닌 사람들에게 큰 흥미를 느끼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는 그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세상의 통념들은 자주 충돌한다"라고 말했던 그였기에 오히려 더 의아스럽게 느껴진다. '안 보면 보고 싶어진다'와 '안 보면 멀어진다', 또 '여럿이 하면 힘이 덜 든다'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통념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그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끌린다'는 자신의 의견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끌린다'는 통념과 충돌시키고 있다.

자,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불필요할까? 그렇지는 않다. 이 책의 내용이 대중적으로는, 표면적으로는 거의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점이,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점이 그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 학교의 축구부가 경기를 하면---그들의 출신은 사실 축구부의 승패와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그들은 단순히 같은 학교라는 이유로 그 축구부가 승리하면 기뻐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는 거의 맞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심리학 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그 다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결속시키기 위해선 그들 사이의 무언가 공통점을 찾아라." 이런 것이 이런 심리학 책이 던져주는 최종적 메시지이다. ‘그들의 출신이 사실 축구부의 승패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심리학 책은 그런 점을 ’이용‘하라고 알려준다. 심지어 회사의 팀 내부에 모두가 싫어하는 팀원이 있을 경우 그를 잘 이용하라고까지 가르쳐준다. 왜냐하면 그 모두가 싫어하는 팀원은 다른 팀원들을 결속시켜주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한 명의 팀원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심리적 전략은 '대중적'으로,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옳아 보이기 때문이며, 심지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들은 여전히 일부 사람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이 된다. 세상의 복잡성을 따져보았을 때, 심리적 테스트들은 결국 아무리 여러 요소를 고려했다 할지라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무엇보다도 그 실험의 결과 도출이 사람들을 조정하기 위한 도구적 요소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럴 때 이렇게 반응한다. 그러니 이렇게 행동하라"---이것이 이 책의 금언이다. 이 책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고 그른지, 도덕적으로 바른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전문가는 그의 전문성 여부와 관계없이 전문가로 불리는 순간 실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문장은 대개 사실이다. 그런데 이 문장에 대해 어떤 책은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는 반면 이런 류의 심리학 책은 "그렇기 때문에 호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문가라는 호칭의 사용을 고려하라"고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류의 책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받는 동시에 이런 류의 책이 지배를 못하는 그 나머지 세상으로부터 외면받는다. 이런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표면적인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다면 이 책의 말을 수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는 편이 낫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제목 일부인 "본심"은 심리적 전략으로 사용된 단어인 셈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실질적으로 피상적인 만남이 인간관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결국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은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닌 그 피상적인 관계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닐까, 하는. 바쁘게 움직이는 삶 속에서,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책은 천천히 사는 법이 아니라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처세서를 비난하는 것보다는 그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이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에게 이런 화두를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 가치를 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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