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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07)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2. 6. 1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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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마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길을 걷다가, 책을 보다가, 자기의 여자친구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그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의 순간적인 감정을 짤막하게 메모로 남겼을 것이고 그 덕분에 그의 글은 이해하기 어려운 단편으로 남게되었을 것이다. 그의 글을 본---그가 사랑했던---한 여자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워. 당신은 글 쓰는 방식이 잘못된 것 같아. 글 쓰는 걸 좀 배워보는 게 어때?" 그는 그가 쓴 글이 누군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해시키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글에 이런 이름을 붙인다: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의 글에 대한 나의 이런 상상이 그의 실제와 얼마나 맞아떨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글 전개 방식이 오로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에게---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도---그렇게 보였을 것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대의 편집자가 그의 글 중 가장 자극적인 걸 골라서 책 판매를 위한 홍보성 문구로 표지장식을 한 것을 난 비판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마치 그 자신이 이 책에서 언급했던 파리 콩쿠르 광장의, 사람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그 오벨리스크의 상형문자처럼 불멸의 명성을 얻고 있다.

길을 가다 멈춰서서 바라보는 이 하나 없고 게다가 그의 책이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전혀 알아볼 수 없을지라도, 발터 벤야민이 짜놓은 책의 구획과 언어의 골목들은 미로의 출구를 한번 알아내보라며 날 계속 끌어당긴다. 그는 영원한 여행을 추구하는 우울증적인 사람들의 동경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볼 수 있도록 자신의 접이식 지도에 그려넣은 뒤, 그전엔 미처 알지 못한 새로운 골목길을 찾아보라며 나를 종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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