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남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명예살인이라니. 그건 중동 지방에나 남아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소위 '명예'를 위해 살인을 하는 그런 행위가 나와 그렇게 동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문화만은 아니었다. 이곳에 합법으로 또는 전통으로 수용되는 살인이 존재하지 않을 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도 암묵의 살인을 종용하는 분위기가 어둡게 깔려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이것은 이슬람만의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하는 윤리적인 문제였다. 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여성 또는 간통한 여성들을 상대로 자행되어 온 이런 관습은 그 행위를 한 여성의 시각이 아니라 그 주변인, 즉 가족이나 친척의 시각에서 자행된다는 점에서 폭력적인데, 그것이 자신이 아닌 남의 시각, 남의 명예를 위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보면 어느 문화권에서나 볼 수 있는 폭력이다. 또한 소설에서 또 한 명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하산은 남성인데, 그는 문제의식이 없는 주변인들로부터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말을 주입식으로, 반복적으로 듣게 됨으로써 자신의 첫 의지와는 무관하게 행동을 하고 만다. 게다가 이 모든 악업을 계속해서 부추긴 가해자가 바로 하산의 할머니, 즉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 속 명예살인은 단순히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성 착취가 아니라 모든 문화권에서 가족, 친인척들이 그들에게 소속된 한 개인에게 가하는 암묵적 폭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할 자유를 박탈당한 채 주변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이런이런 삶을 살도록 종용받는 삶. 하산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저항도 했지만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메아리처럼 중얼거리는 저주와 험담, 악의에 찬 시선과 계략에 의해 굴복당하고 만다. 나이 어린 하산이 어떻게 그걸 이겨낼 수 있었겠는가? 그나마 그가 어린 아이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세속적인 세상에 그만큼 저항한 것이리라. 그가 어른으로 나왔다면 이 소설은 현실성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틀라스는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그 무게로 인해 허리는 휘었고 목은 빳빳하게 굳었으며 다리는 무릎을 꿇은 채 펴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무거운 것을 들고 있다. 그것을 대신 들어줄 헤라클레스를 기다리며.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명예 아닌 명예를 내려놓기 위해서, 우린 대체 누구를 기다려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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