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어떤 고칠 점을 발견하고 그걸 고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변하기란 어렵다. 이것을 재닛 윈터슨은 과거와 미래가 가진 중력이라는 힘을 이용해 표현한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과거는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중력에 끌려가고 있다. 중력에서 벗어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다 우리 중 몇이나 자신의 궤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우리는 자유의지라는 환상과,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자기개발 훈련 따위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복권이나 백마 탄 왕자님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수 있다고 믿는다. 고대인들은 숙명을 믿었다. 그들은 누군가가 무언가를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었다. 과거와 미래의 인력은 너무나 강하여 현재는 그 사이에서 찌부러지고 만다. 우리는 유전되는 패턴과 우리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변형되 패턴들의 작용력 밑에 대책 없이 깔려있다. 이 짐은 감당할 수 없다." (117~118쪽)
이 책에서 "나는 그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다"라는 문구가 몇 번 등장한다. 이 말은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의 신화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사람들이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무게와 그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힘에 대해, 그리고 그 무게를 던져버린 사람들에 대해.
그것은 자신을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했던 윈터슨의 인생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짐을 내려놓길 원했고, 그걸 부정하는 이들을 보며 '이걸 왜 내려놓으면 안되지?'라고 고민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관념을 이 책에 반영했다. 그의 세계관이 나의 세계관과 많이 흡사하였기에 이 책은 나 또한 그것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
그러니까 바꿀 수 없는 과거와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미래를 위해 사는 것---그런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그 짐을 내려놓고 싶다는 바람. '넌 이러 삶을 살아야해'라고 말하는, 숙명과도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신화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제우스와 헤라는 숙명을 자기 자식 위에 던지고 그렇게 살 것을 종용한다. 그런데 제우스는 여전히 거인족들과의 전쟁 속에서 살고 있고 헤라는 여전히 남편의 여성편력에 대한 의심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에게 전쟁을 대비하고 여자를 조심하라며 끊임없이 다그친다. 그들은 언제나 그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 역시 그 세계 속에 머물길 바란다. 그들은 나의 세계 역시 그들의 세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조만간 논박해야 하는 두 개의 현실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만약 당신이 당신 부모의 소설을 계속 믿는다면 당신 자신의 서사를 구축하기는 어렵다." (161~162쪽)
아틀라스 역시 지구를 내려놓고 싶어한다. 그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망설인다. 그러던 그가 지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라이카 덕분이었다. 스푸트니크호에 타고 있던, 인간에 의해 실험체로 사용된, 죽음이 예정된, 인간사 최초로 우주 밖으로 날아간 생명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자기 주인과 정원을 뛰놀고 싶어했던, 그 라이카.
과학자들은 실험체로 사용되어 죽는 것이 라이카의 운명이라고 믿었지만 이 신화에서 아틀라스는 라이카를 구해준다. 아틀라스는 라이카를 정해진 숙명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라이카 또한 아틀라스를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지구를 내려놓은 뒤 걱정에 차 돌아보았을 때---그곳에는 지구가, 우주 한 공간에 푸른 빛을 내며 떠 있었다.
변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들의 가족, 친지, 친구, 이웃---많은 것들이 그들을 둘러싼다. 그들은 강한 작용으로, 유전자를 공유했다는 과거의 중력과, 그래서 미래 역시 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함께 해야한다는 미래의 중력으로 그들을 끌어당긴다. 만약 그들이 변하고자 한다면, 먼저 라이카를 찾아야할 것이다.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고 우주 밖으로 탈출하고 있던 스푸트니크호의 라이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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