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아침'처럼 눈부시고 / '밤'처럼 위안을 준다." (보들레르 지음. 악의 꽃. 동서문화사 74쪽)
우리가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밤이 주는 그 위안에 있다. 그러나 밤이 지난 후 곧 다가올 아침을 알지 못했다면 밤은 위안을 주는 존재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느낌의 죽음과는 다르게 우리가 밤을 찬양하는 건 그 뒤에 다가올 일들에 대해 알기 때문이다. 밤의 위안은 잠시면 족하다. 결국 우리의 삶이란 빛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보라, 우리가 위안을 얻는다는 그 밤 시간 동안에도 우리는 집 안에서 불빛을 환하게 켜고 있지 않았던가. 밤길을 걸으면서도 우리의 눈길은 밤하늘의 별빛에 감탄한다. 그리하여 분명해진다. 밤이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밤이 완벽하게 어둡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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