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17. 이날은 백제의 문화를 둘러보는 날이었다. 처음 향한 곳은 공주 송산리 고분군이었는데 그중에서 으뜸은 당연 무령왕릉이었다. 송산리에서 먼저 발견된 5호분과 6호분의 배수로 작업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무령왕릉은 송산리 고분군 중 유일하게 도굴이 되지 않은 무덤이자 우리나라 삼국시대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그 주인을 알고 있는 무덤이다. 동아시아 무덤 중에서도 무령왕릉처럼 기록이 자세히 남아 있는 무덤이 거의 없다고 한다. 발굴단이 무덤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지금껏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무덤의 지석, 즉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비가 발견되었을 때 그 흥분을 상상하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나조차도 몸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국내 발굴 역사의 최대 성과로 기록되고 있는 이 무덤은 동시에 최대 오점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겨우 북어 세 마리, 수박 한 통, 그리고 막걸리를 가지고 무덤 입구 바로 앞에서 위령제를 지낸 발굴단은 무려 17시간만에 발굴 작업을 완료해버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취재진들은 서로 특종 사진을 찍겠다며 왕릉 내부로 들어가려 했고, 그 와중에 바닥에 놓여 있던 청동 숟가락은 밟혀 부러졌으며, 한 신문사 기자는 연락을 늦게 받았다는 이유로 문화재관리국 직원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니 그 때 왕릉에서 펼쳐졌을 혼란이 상상이 된다. 경험이 부족했던 발굴단은 서둘러 발굴을 완료하고 싶었을 것이다.
고분군에 가보니 실제 무령왕릉은 닫혀 있었다. 무덤 입구에는 "1997년 7월 15일, 문화재청에서 영구 미공개를 결정"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옆에 조성되어 있는 송산리 고분군 모형전시관에서 모형이나마 그 내부를 감상할 수 있었다. 모형은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어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국립 공주박물관 역시 볼 것들이 많았다. 다만 왕과 왕비의 나무 관이 완전히 파손된 상태였다거나 발굴 당시의 혼란에 관한 기록은 전시되어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무령왕릉에 대해서는 따로 자세히 글을 남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음엔 근처에 위치한 공산성으로 향했다. 잘 조성된 성이었는데 날이 뜨거워 이 넓은 곳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금서루에서 쌍수정을 거쳐 진남루까지 걸으며 나름의 산책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국립 부여박물관이었다. 부여를 그냥 지나치 아쉬워 들렀는데, 박물관 폐관 시간이 1시간도 남지 않아 정말 서둘러 구경했다. 뭔가 자세히 읽을 시간도 부족했는데, 그래도 시간을 내어 유심히 본 것이 있으니 그건 "백제 금동 대향로"였다. 서울의 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곳에 이 백제 금동 대향로가 복제되어 있는데, 바로 이곳 부여박물관에 있는 것만이 진품이었기에 놓칠 수가 없었다. 사각의 견고한 유리틀 안에 자리잡고 있는 이 호화로운 대향로는 빛나는 백제 예술을 집약시켜 놓은 것이었으니, 보고 또 보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박물관 문을 나섰다가 이내 다시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백제 금동 대향로를 바라보고는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했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모형전시관 입구
무령왕릉의 모형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실제 무령왕릉 입구
공주 공산성 금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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