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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시보 천문대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3. 5. 13.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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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를 보다가 주인공 아래쪽으로 엄청난 크기의 전파망원경이 클로즈업되면서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때 난 그 전파망원경을 영화에서 만들어 낸 가상의 물체라 생각했다. 'SF영화라 그런지 저런 엄청난 전파 망원경을 가상으로 집어넣었네.' 


하지만 그 전파 망원경은 픽션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 전파 망원경은 1963년에 완공된 아레시보 천문대에 실제로 존재했다. 아레시보 천문대는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 남쪽에 위치한 전파천문대로, 지름이 약 300m인 반구상의 움푹 팬 땅에 금속판을 대어 고정식 반사경을 만들었다.




위 사진은 2010년에 한 관광객이 찍은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의 최근 모습이다(출처: http://www.flickr.com/photos/thestroms/4314224143/). 반사판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월탓도 있겠지만, SETI 프로젝트의 부정적 견해로 예산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SETI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외계 생명체가 보냈을지도 모를 전파를 수신하여 분석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런 신호는 잡아내지 못했다. 영화 <컨택트>는 SETI 프로젝트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인해 예산 지원이 줄어들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부와 과학자 간의 갈등을 그렸다.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의 최근 사진을 보니 그 갈등이 여전한 것 같다.


전파 망원경으로 외계 신호를 수신하려면 하나의 전제가 있어야 한다. 외계 생명체 역시 대화의 수단으로 전파를 사용할 거라는 가정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과학 문명이 성간 대화를 시도할 때는 여러 가지 효율적 이유 때문에 전파를 사용할 것이고, 전파를 외계에 쏘아올릴 정도의 문명이 수십 만 년이나 수백 만 년 전에 태양계를 향해 전파를 발사했다면 그것을 지금쯤 우리가 수신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과연 외계 문명---그런 것이 있다면---이 전파를 써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 했을까? 영화 <컨택트>는 거문고 자리의 베가에 위치한 외계 문명이 지구의 1940년대 텔레비전 신호를 수신한 뒤 그걸 지구로 되돌려 보낸다는 가정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전파 신호에 자신들의 과학 집결체, 즉 통신 장비 설계도를 실어 보낸다는 상상을 더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다분히 '인간적'이다. 과학자들이 보이저호의 황금동판에 인류의 정보를 새겨넣은 것과 유사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황금동판에 인류의 과학 수준을 새겨 넣지는 않았다. 칼 세이건은 "보이저 호를 성간에서 잡아낼 정도의 문명이라면 인류보다 훨씬 더 과학 문명이 발달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과학 수준을 새겨 넣지 않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외계 문명이 냄새로 대화를 나눈다면? 자신들의 존재를 외계에 알리기 위해 중력을 쏘아 올렸다면?


같은 인류의 문자인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도 우리는 오랜 세월을 소모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인류가 이룩한 뛰어난 과학으로도 여전히, 고래나 새와 소통하는 방법을 모른다. 뛰어난 두뇌를 지닌 고래가 인류에게 무언가를 알리기 위해 노래를 이용하여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하물며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외계 문명과의 대화란 과연 어떠한 것이겠는가.


1963년에 세워진 이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은 지구 최대 크기의 반사 망원경이란 타이틀을 무려 반 세기 동안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그 영광은 2016년 완공 예정인 중국의 직경 500m 전파 망원경에게 넘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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