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새롭고 산뜻한 묘사들. 특히 인물들의 태도와 감정 묘사는 탁월하였고 눈여겨 볼 만한 점이 있었다. 그의 묘사를 읽고 있으면 난 그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그의 단어 하나하나를 따라 그가 설명하는 문장을 머릿속에서 재현하게 된다. 이것이 그의 글이 지닌 힘이 아닐까? 과장되거나 강렬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고 따스하게 스며드는 그의 묘사들. 실로 책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묘사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묘사는 여태 읽어왔던 책들의 것과 무언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그 상황에 놓여진 사물과 상황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그 이야기의 그 부분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묘사.
책상 위에 시계를 한번 묘사해보자. 난 그것을 그저 '하얗고 커다란 원형의 시계'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매일 아침이면 시끄럽게 울어대서 내가 내동댕이치곤 하는, 그래서 그때마다 가해진 충격으로 바늘 끝이 가늘게 떨리곤 하는 시계'라고도 묘사할 수 있다. 만일 이언 매큐언이 그런 식으로 소설의 어떤 위치에 묘사를 적었다면 그 문장은 그 위치에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어도 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있어야만 하는 문장. 내가 이렇게 인물과 풍경 묘사에 충실하고 그것을 풍부하게 살려내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심지어 이런 가득 찬 묘사가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은근한 여백을 뺏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동적인 구조, 상황을 묘사하는 화자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데 그럼 이 화자는 대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끔 만드는 화법들.
체실 비치에서 일어난 단 하나의 사건, 시간으로 따지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이지만 모든 묘사들은 소설 뒷부분에 집중되어 있는 파국을 향해 서서히, 해안에 다다를수록 점점 거대하게 자신의 몸집을 키워가는 파도처럼 자신의 거대한 몸을 치켜 세워갔다. 그 높이 솟아오른 파도가 바닥에 떨어질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느라... 난 한 박자씩 글 읽는 속도를 늦춰야만 했다. 그 이전에 쓰여진 문장들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한 전주곡이었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표현하고 있는 두 연인 사이의 극적인, 모순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흔히 겪곤 한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감히 다가기 어려운 솜씨로 짓는다. 그것이 이언 매큐언의 힘이었다.
난 감히 이렇게 말한다. 이 소설은 사랑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만 하는 소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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