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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1.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2011)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4. 5. 6.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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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자기에게까지 이르는 3대에 걸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구성은 거의 대부분 3인칭의 전지적 작가 시점을 띠는데, 자신의 윗세대를 시간 구성에 따라 서술하고자 할 때 가장 간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면서 동시에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한다. 이야기가 실제와 같다는 전제 하에서는 불가능한 구성인데, 이런 구성은 이야기에 고정된 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조언을 해준다. 진지한 이야기라면 적어도 구조만큼은 사실적이어야만 한다는 믿음이 하나의 고정 틀이라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화자는 자신이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깊숙히 개입하는데, 한 단락에서는 세 명의 사업가가 어디엔가로 이동하는 장면을 서술하던 도중 갑자기 엉뚱한 다른 이야기를 하더니 이윽고 이렇게 말한다. "어쨌든 여기서는 이쯤 해두자. 이만하면 세 명의 사업가가 공업단지에 도착할 만한 시간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에 개입하는 정도가 이와 같은데 이만하면 정말 파격적이라고 할만 하다. 이런 관점은 전통 소설에서 3인칭이나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자는 과연 누군인가라는 물음을 풀기 위한 적절한 방향을 내게 제시해주고 있다. 이 복합적 관점의 화자는 소설 바깥에 앉아서 소설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소설 안에서 마치 등장인물들의 옆에 서서 그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묘사를 한다. 관점뿐만 아니라 시간상의 배치도 눈여겨 볼만 하다. 살만 루슈디는 시간순으로 이어지다가도 가끔씩 병렬식의 사건 진행 방식을 혼용하여 이야기를 흥미 있게 끌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한밤의 아이들이 이런 혼합 관점이나 병렬 배치를 사용한 첫 소설은 아니지만 액자식으로 이야기를 나눈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화자의 관점을 바꾸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눈과 입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성공적인 방식은 이 소설이 처음이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의 쉼표 배제, 사진 속 인물들끼리의 대화, 인용문을 긴 말줄임표로 대신하는 등의 표현 기법은 표현 기법에는 정해진 한계가 없음을, 그러니까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원고지 쓰기법만이 오로지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아직까지 나에게 고정관념처럼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주제 사라마구 이후 다시 일깨워준 셈이다.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일까. 소설 상당 부분에서 신비로운 표현들이 보인다. 그러니까 마치 구장잎을 씹던 노인들이 자기들끼리 전해 내려오는 믿기 어려운 전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화자는 은연중에 스스로 그런 노인들이 되고자 한다. 지하실에 숨어 사는 나디르 칸이 그 밑으로 내려갈 때 "지하세계로 내려갔다"(129쪽)고 표현한다거나, 허밍버드의 암살 장면에서 허밍버드의 가청 한계를 넘어서는 콧소리 때문에 수천 마리의 개떼들이 몰려왔다거나,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말들이 내부에 쌓일수록 할머니가 점점 더 크게 부풀었다거나(131쪽), 코가 턱에 닿을 거 같았다거나, 밤만되면 석상이 살아나서 위풍당당하게 도시를 누비고 다녔다거나(204쪽)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아버지 인생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마치 그 장면을 본 것인냥 말한다거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이 소설의 등장인물도 언젠가는 "백년의 고독"의 누구처럼 하늘로 승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의 화자인 살림 시나이는 그런 환상적 표현을 쓸 때 대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온다. 즉, 미신을 믿는 할머니가 해준 말이라거나, 숙덕공론을 하는 노인들의 이야기라거나, 정신이 빠져 버린 사람의 이야기라거나. 이런 기법은 실제 인도에 퍼져있는 미신들을 꼬집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인도라는 나라가 지닌 동양적 환상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것이...? 책 속에는 어떤 추측을 가능케 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아담 아지즈는 그때부터 동서양의 의술을 접목시키는 일에 몰두했는데, 이 도전이 차츰 그를 지치게 만들어 결국 인도에서는 미신과 우상을 비롯한 온갖 마술적 관습의 지배력이 영영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148쪽)

또 눈여겨 본 대목은 파격적인 대사 처리였다. 주제 사라마구도 대화체의 문장기호를 없애는 것과 같은 특이함을 선보였는데, 살만 루슈디의 소설도 그에 못지 않다. 형식적인 대화체 구성을 벗어나서 '그리고'란 말로 대화를 이어가거나 서로의 생각을 보조적인 설명---'A는 중얼거렸다, A는 생각했다'와 같은---없이 이어나가는 등... 그런 방식으로도 대화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문장에 활력을 주는 효과가 있었다. 또 209~210페이지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가 다른 두 장면을 교대로 보여주는 기법을 선보이는데 이 역시 훌륭했다. 살만 루슈디는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가 없음을 잘 보여 주고 있었다.

이 소설이 쓰인 시점을 반영하듯, 봄베이(1995년 뭄바이로 이름이 바뀌었다. 소설은 1981년 출간)라는 명칭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살만 루슈디는 언젠가 이 도시의 이름이 뭄바이로 바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그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자비로운 뭄바데비 여신을 모셨고, 따라서 그 여신의 이름이-뭄바데비, 뭄바바이, 뭄바이-마땅히 이 도시의 이름이 되어야 했다." (202쪽) 선견지명이라면 그 또한 대단하다.

작가는 소설 도입부(소설의 두 번째 쪽)에서 자못 거창하게 느껴지는 복선 두 개를 주인공의 입을 통해 말했다. 하나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나는 곧 서른한 살이 된다. 재수가 좋으면."(26쪽)이라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사람들의 인생을 먹어치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를 알려먄, 나 하나를 알기 위해서는, 당신도 나처럼 그 모든 인생을 먹어치워야 한다."(26쪽) 난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던져진 이 두 개의 복선이 언제쯤 드러날지 궁금했다. 그 중 "인생을 먹어치우는"이라는 부분은 238쪽에 와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 즉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야이기를 200쪽에 걸쳐서 하고 있는데, 자신에게 유산(유전자뿐만이 아니라 성격과 성향까지도)을 남겨준 이들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 사람의 인생을, 즉 자기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먹어치웠다"라는 것은 풀어서 이야기하면 자신이 그 사람들 모두에게서 영향받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이해하려면 내가 그 사람의 어머니와 아버지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인생을 알아야 한다고 소설의 주인공은 말하고 있다. 

그는 때때로 희극적 기법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외할아버지가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꺼내 보다가 발생하는 일화(243쪽)가 대표적이다. 그 일화가 희극적인 이유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주 소중하고 오래된, 그래서 다소 무겁게까지 느껴지는 자신의 오래전 추억을 회상하다가, 갑자기 예상하던 전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야기들은 구성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유쾌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가끔은 왜 이런 이야기들을 세세하게 (어쩌면 장황하게) 풀어놓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런 떠들썩함과 과장과 혼란과 마법과 소용돌이들이... 인도 사람들, 인도 문화의 한 특징은 아닐까...? 그런데 이런 '장황함'과 유쾌함이 이 소설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진지함과 교묘하게 섞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학창시절 급우들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자. 루슈디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이용해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그런 모습은 앞의 이 문장과 이어진다: "광고판의 아이와 버스 안의 아이들: 그들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알았고 그 확신 때문에 단순했고 1차원적이었다." (330쪽) 이런 방법을 통해 루슈디는 자신의 소설이 그저 웃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통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익살과 과장, 환상... 그리고 그 속에서 묻어나는 역사, 무게... 살만 루슈디의 소설은 그런 단어들과 잘 어울린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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